오피니언

"글 모르는 어르신께 읽고쓰는 즐거움 드려요"

16년째 한극교육 봉사 대구글사랑학교 이경채 교장




나이가 한참 젊은 여 선생님이 받아쓰기 문장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이때마다 교실에 앉은 10여명의 할머니 학생들은 “선생님, ‘는다’ 입니꺼, ‘넌다’ 입니꺼?”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자 한 자 공책에 정성스레 써내려 간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 한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한글수업을 진행하고 영어와 컴퓨터, 수학 등도 가르치는 대구시 중구 남산동 소재 ‘대구글사랑학교’의 20일 오후 한글수업 받아쓰기 시간풍경이다. 이 학교 교장인 이경채(43)씨는 한글교육봉사 경력 16년의 베테랑 선생님이다. 6명의 자원봉사 교사들과 함께 일주일에 20여개의 수업을 진행하는 이씨의 몸은 10개라도 모자라지만 수강료 한 푼 받지 않아도 가르치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대구글사랑학교를 찾는 학생들의 연령대는 4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까지로 주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보다 한 발 늦게 시작한 만큼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각이나 결석 한번 없을 정도로 성실하다. 지난해 8월부터 이곳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김 모(68) 할머니는 “너무 재밌어서 일주일 내내 학교 갈 날짜만 기다린다”며 “어제도 밥할 생각도 안하고 3시간이나 숙제를 했다”며 밝은 웃음을 보였다. 이씨가 한글교육 자원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지난 1990년. 기독교인인 이씨가 성경공부를 했던 대구 신암교회에서 한글반이 개설되자 가벼운 마음으로 자원교사로 활동하게 된 게 계기가 됐다. 길거리 간판조차 읽지 못하던 어르신들에게 ‘읽고 쓰는 즐거움’을 베푸는 일에 푹 빠져 14년간 자원교사 활동을 하던 이씨는 좀더 본격적인 교육터전을 마련하고 싶어 2004년 1월 ‘대구글사랑학교’의 문을 열게 됐다. 사무실 임대료가 없어 자신이 사는 28평 아파트의 거실과 방 두 칸을 모두 교실로 꾸미고 교재제작 등 학교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파트타임 학원강사부터 가사도우미 일까지 틈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돈을 받고 이 일을 했다면 ‘의무감’에 이렇게 오래 해오지 못했을 거에요. 처음으로 자식에게 손수 편지를 썼다며 눈물을 보이는 어르신들을 볼 땐 더한 보람이 없죠” 이씨는 “노인들을 위한 한글교육이 단순히 읽고 쓰기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가져야 했던 창피함을 해소하고 자신감 회복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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