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이유석의 ‘말하는 카메라’] (4) 나는 월급 50만원 촬영보조

최저임금 사각지대..밤샘 근무도 일쑤

도제식 문화가 근로착취 정당화

촬영장의 핵심인력...정당한 대우받아야

쉴 새 없이 조명이 터지고, 멋들어진 포즈의 연예인 그리고 힘찬 목소리와 함께 셔터를 누르는 사진작가가 있는 화보 촬영 현장. 이것은 매주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보는 장면이면서 잡지와 광고 지면에 실리는 매혹적인 이미지가 탄생하는 모습이다. 미(美)를 창조하는 패션 광고사진가는 매력적인 직업이 됐고, 많은 젊은이가 꿈과 열정을 안고 사진판에 뛰어든다. 그들 앞에는 어떤 운명이 놓여 있을까?

청년실업이 국가의 고질적 문제가 됐지만, 사진 구인 사이트에는 항상 젊은 촬영보조를 뽑는 광고가 넘쳐난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패션잡지화보 촬영을 한다는 스튜디오, 인기 연예인을 많이 찍었다는 업체 등 화려한 이력들로 유명한 정상급 상업스튜디오들이 일할 기회를 주고 있다. 상업사진작가가 되려는 젊은이에게 기회는 열려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열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한 유명 상업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었다.


“사진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뽑는다고 해서 전화 드렸어요”

“네, 이력서 들고 스튜디오 방문해주세요”

“근무환경이나 처우는 어떻게 되나요?”


“일단 일 처음 시작 하는 입장이니까 월급은 5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출퇴근시간은 유동적이고 마감때는 조금 바빠서 야근도 하고 주말도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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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입문하는 젊은이가 큰돈을 받기는 힘들겠지만, 스튜디오들이 제시하는 조건은 최저임금 이하로 깜짝 놀랄만한 대우다. 하지만 혹독한 촬영보조일은 상업사진가가 되기 위해 입문하는 거의 모두가 거쳐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년은 월급 100만 원을 넘기 힘든 경우가 많고, 그 시기가 지나도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촬영보조가 월급이 적다고 비중 없는 일을 하거나 근무시간이 적은 것은 아니다. 촬영준비는 기본이고 청소, 페인트칠, 목공, 사진보정, 운전, 회계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만능이다. 마감이 다가오면 밤을 새우고, 오전에 다시 촬영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들 없이 촬영이 진행되기 어렵다. 사실상 스튜디오의 핵심인력인 셈이다.

이 처럼 짠 임금의 원인은 사진판 저변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도제문화에 있다. 장인에게 기술을 전수받는다는 명분아래 보조는 제자의 입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도제문화는 자본주의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전문교육기관이 생겨나고 교육과 노동이 분리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상업스튜디오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앞서 밝혔듯이, 촬영보조는 많은 일을 수행하는 스튜디오에 꼭 필요한 직원이다. 상업스튜디오의 촬영보조 모집은 일손이 부족해 직원을 뽑는 것에 가깝다. 상업스튜디오가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후학양성을 위해 그렇게 많은 채용공고를 쏟아내지 않는다. 단지 도제문화 속 ‘배움’이라는 개념을 빌려 짠 임금의 이유를 궁색하게 설명할 뿐이다.

또한 오랫동안 일한 보조에게 나은 환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보조는 창업을 하여 또 다른 후배 보조를 찾아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독립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도제문화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더라도,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은 최저 임금을 지키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5,210원이고 주5일 1일 8시간 일했을 때 한 달에 1,088,890원을 지급해야 한다. 다른 업종에서는 이를 ‘최소고용비용’이라 생각하지만, 촬영보조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사진판에는 ‘업계 최고대우’에 해당한다.

요즈음 촬영보조 처우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본인이 받았던 불합리한 악습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진작가도 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려는 청년들이 줄어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스튜디오들은 치외법권지대인양 촬영보조에게 상식이하의 대우를 하고 있다. 마치 하인 대하듯이 “나때는 니네 보다 더했다” “이 판은 원래 그렇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식으로 윽박지른다. 촬영보조라는 명분으로 더 이상 젊은이의 꿈과 열정을 착취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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