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디플레이션 탈출인가 자산 버블 조짐인가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달 29일 글로벌 금융시장에 정상적 범위를 벗어난 거품이 끼여 있다며 자산시장이 "위험한 행복에 빠져 있다"고 경고한 이후 찬반 논란이 활발하다. 세계 각국이 과다차입에 의한 성장전략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는 도발적 진단이 더 과감하게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선진 각국 중앙은행의 이론적 흐름을 주도해온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면 충돌하기 때문이다.

BIS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반박 논리를 펴는 곳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인 듯하다. 수석 논설위원인 마틴 울프는 '바젤(BIS의 스위스 소재지)의 예레미아가 보낸 잘못된 충고'라는 칼럼에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BIS의 충고를 정중히 듣되 그들이 내린 처방의 주요 대목은 거부해 마땅하다"고까지 단언했다. BIS의 조언을 따르면 오히려 부채가 늘어나고 기업도산이 증가할 것이며 그 결과 각국 경제가 더 큰 악순환을 겪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연 누가 맞는 것일까. 어느 한쪽이 맞는다면 다른 한쪽은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시계열(時系列)을 좀 더 확장해본다면 BIS의 경고도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는 것이 우리 판단이다. 게다가 IMF의 논리가 반드시 옳았던 것도 아님이 증명되고 있는 요즘이다. 우선 긴축정책이 무조건 잘못됐는지부터 살펴보자. FT의 고향인 영국이 비근한 예다.

4월 IMF는 영국 재무부의 긴축정책을 "불장난하는 것과 같다"고 공격했으나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6월 들어 영국의 강한 경기 회복세를 과소평가했다며 무릎을 꿇는 해프닝을 벌였다. IMF는 이때 "영국 정부의 긴축정책은 적절했다"고 자신의 판단을 번복했으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우리는 그동안 상황을 잘못 파악했다"고 공식 인정했다.


다음은 시계열의 문제다. FT 사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완화 정책이 없었다면 미국이나 영국, 그 밖의 주요 경제권은 최근 수년간 훨씬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며 조기 긴축정책은 성장률을 낮추고 디플레이션을 야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BIS가 두려워하는 부채의 실질가치는 더 커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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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 아닌 현재 시점이다. BIS는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남발을 지속해온 결과 최근 들어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지목한 것으로 이것이 견제 없이 지속될 경우 버블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을 위기로부터 구하는 것과 그런 구조행위가 만성화하는 것은 엄격히 구분해야 마땅하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직후 중앙은행이 돈을 무제한 퍼부으면서 투자자들을 구원한 행위를 시장에서는 흔히 '그린스펀 풋'이라고 한다. 이런 유의 풋이 남발되면서 투기세력 지원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 선진국 금융시장의 현실이다. 금융시장에서 갑작스러운 위기가 발생하고 주가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에 공짜 '재난보험'을 제공해옴으로써 투자자는 이제 별다른 두려움 없이 투기에 몰입할 수 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탄, 2000년의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에도 연준은 적극적으로 유동성 공급을 실시하고 금융시장을 끔찍한 피해로부터 구해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도 마찬가지다. 그린스펀 풋, 버냉키 풋의 일상화다. 그린스펀은 지나치게 장기적으로 낮은 금리를 어떻게 정당화했는가. 그는 이를 '뉴이코노미'라고 자화자찬했다. 뉴이코노미의 끝이 바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울프는 버블 위험을 지적한 BIS를 구약성서의 예언자 예레미아에 비유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것은 예레미아가 아니라 그의 예언을 무시했던 이스라엘 민족이다. 예루살렘은 외적에게 점령당하고 백성은 포로가 돼 바빌로니아로 끌려가야 했다. 비유가 잘못된 것이다. 예레미아는 자기 민족의 바빌로니아 유수 이후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사라졌고 우리의 춤은 절규로 바뀌었다(예레미아 애가)"고 한탄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낮은 변동성 지속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금융시장에 위험선호가 높아지는 반면 리스크를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BIS 보고서가 거시건전성 강화를 위한 촉매 역할을 한다면 본래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는 셈이다. 마냥 그린스펀 풋에 안주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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