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고, 구하는 자가 얻으며,눈물을 흘리는 자가 위로를 받는 그런 날이 온다.’ 파울로 코엘료는 산문 ‘발키리스’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청춘에게 이렇게 단언했다.
그리고 이 말을 증명해가고 있는 한 청년이 있다. 아시아 최고 그룹 중 하나인 슈퍼주니어의 려욱이 2011년 뮤지컬 배우로서 첫발을 뗐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연습하며 수없이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역할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노력에 대한 보상과 눈물에 대한 위로는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로 돌아왔다. 뮤지컬에 도전한 지 어언 3년. 이제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그는 최근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이하 ‘여신님’)로 그의 세번째 공연 필모그래피를 그려냈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초연·재연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삼연을 올린 국내 순수 창작극이다. 6·25 전쟁 중 배에 탑승한 남북한군 6명은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나 표류 끝에 무인도에 도착한다. 이들은 이데올로기 대립을 내려두고 무인도 탈출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유일하게 선박 수리 기술을 가진 ‘순호’는 전쟁의 상처로 정신이 불안정하지만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착한 군사다. 지난 5일 ‘순호’로서 마지막 공연을 막 끝낸 배우 려욱을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지막 공연 때 분위기가 무척 좋았어요. ‘스물’까지 숫자를 외치는 마지막 부분에선 ‘열아홉’, ‘스물’도 다함께 외치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외치지 않고 저 혼자, 순호 혼자 외쳐야 했죠. ‘이제 정말 안녕이구나’ 라는 생각에, 이 ‘열아홉’, ‘스물’을 외치면 끝이 난다는 생각에, 최대한 오래 끌 수 있을 만큼 시간을 끌었어요. 군모를 앞에 두고 정말 엉엉 울었죠.”
끝은 결코 끝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 려욱은 마지막 공연 때 자신이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순호’가 시간이 흐르며 자신도 믿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믿는 것처럼 려욱도 ‘여신님’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했다’는 것에 큰 의미와 믿음이 생겨 눈물을 쏟고 말았다.
“(막공 때) 무대에서 관객들 한 명 한 명을 보고 싶었어요. 또 배우들은 어떤 모습일까 유심히 보기도 했어요. 마치 순호가 바라보는 것처럼요. 아마 순호도 무인도를 떠나면서 되도록 많이 눈에 담으려고 했을 거예요. 순간 ‘내가 순호에 많이 빠져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
무인도에 갇힌 군인들이 탈출하기 위해선 고장난 선박을 수리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선박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순호 뿐. 다른 군인들은 마음씨 착한 순호가 전쟁의 상처를 이겨내고 선박을 고칠 수 있도록 섬의 ‘여신님’이 순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며 ‘여신님이 보고계셔’ 작전을 펼친다. 순호는 ‘여신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해낸다. 그렇다면 배우 려욱에게 ‘순호’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사실 처음엔 ‘순호’를 ‘이상한 아이’라며 가볍게 봤어요. 그런데 한 장 한 장 대본을 읽으면서 ‘순호’를 얕봤던 게 미안할 정도였죠.”
“‘순호’는 ‘여신님’을 만들어가는 중심이 되는 인물이에요. 이 아이로 인해 사람들이 변해가고 서로서로 믿게 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죠. ‘순호가 어떤 마음일 거 같아‘ 라는 연출님의 질문에 많이 고민하면서 울고 느꼈죠. 연출님, 다른 배우들과 함께 어부의 아들이라는 설정에서부터 5년 전·10년 전 상황까지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지막 공연 때까지 궁금한 건 계속 연출님께 질문할 정도였으니까요.”
려욱은 ‘여신님’ 이전에 뮤지컬 ‘늑대의 유혹’과 ‘하이스쿨뮤지컬’에 주연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 ‘순호’라는 캐릭터는 그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전에 했던 두 뮤지컬은 쇼뮤지컬이다 보니 외적인 것과 발성에 중점을 맞췄어요. ‘여신님’에선 노래에 있어서는 덜어내는 작업을 했죠. 최대한 ‘순호’로 보이기 위해서였요.”
“제가 노래를 잘하는 배우로 캐스팅됐지만, ‘순호’는 순수한 모습이 부각돼야 하기 때문에 노래보다는 연기가 더 중요했죠. 그래서 자만하지 않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순호’가 연기보다는 노래가 더 중요한 아이였다면 배운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누리는 부분이 컸을 거예요. 누린 것보단 얻은 게 많았기 때문에 다음에 참여하게 된다면 여유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아요”
마니아층이 두터운 극인 터라 려욱의 삼연 합류 소식에 아이돌 배우의 바쁜 스케줄 등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개막 후 이런 걱정은 금새 사그라들었다. 려욱은 노래야 말할 것도 없고 연기적으로도 ‘순호’를 훌륭히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그 뒤엔 ‘여신님을 보고계셔’와 ‘순호’에 대한 려욱의 애정이 숨어있었다. 공연 관계자에 따르면, 려욱은 스케줄이 끝나고 한두시간이라도 시간이 나면 틈틈이 연습실에 들릴 뿐더라 공연과 연습을 위해 본인의 스케줄을 매니저와 함께 직접 맞추고 정리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제작진들 모두 입모아 그의 열정과 노력을 인정하고 칭찬할 정도다.
“처음엔 (관객들의 의견을) 찾아보지 않았는데 조금씩 보면서 관객들의 생각을 공유하게 됐죠. 저는 원래 고집 부리지 않고 제가 바꾸겠다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관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더 빨리 습득하고 배울 수 있어요.”
“ ‘아이돌’이라서 득이 되는 부분도 많아요. 원래 뮤지컬 배우였으면 더 잘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는데, 아이돌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노래도 잘하네’ ‘연기도 잘 하는구나’ 하고 더 좋게 봐주시는 기회가 될 수 있죠. 제가 라디오 진행을 병행하면서 뮤지컬을 했는데 최대한 스케줄 없을 때 하는 게 좋죠. 다른 스케줄 하면서 배우들하고 인사 한번 안 하고 첫공 전 런스루 할 때 얼굴 보는 식은 아닌 거 같아요. 바쁜 스케줄 때문에 그렇게 올라가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죠. 이런 점들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27일 공연이 끝나고 무대서 내려오는데 무대감독님께서 ‘려욱 배우님, 정말 잘 했어요. 힘들었을텐데’라면서 안아주시는 거예요. 늘 제가 짊어지어야할 부담을 배우와 스탭들과 나누니까 정말 감사했어요.”
순호를 위해 만들어낸 ‘여신님’을 정녕 순호가 믿는 지 아닌 지는 관객들의 몫. 그렇다면 ‘려욱 순호’는 여신의 존재를 믿었을까.
“사실은 나중에서야 믿게 되는 거죠. ‘꿈결에 실어’ 장면에서 순호가 편히 잠에 들 수 있게 여신님이 다가와요. 저도 항상 ‘순호는 여신님을 믿을까? 생각했어요. 마지막 공연 땐 잠들지 않고 여신님을 바라보다가 여신님이 손을 뻗을 때 잠에 들었죠. 한 켠에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같은 순호를 연기하지만 회차마다 다르게 연기했어요. 정리가 안 됐다기 보다는 순간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한 거죠. 짜인 틀에 따라 로봇처럼 하는 게 아니라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표현하는 것이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때그때 마다 감정이 달랐기 때문에 여신을 ‘믿었다, 안 믿었다’ 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여신님’ 대작전은 순호를 위한 ‘여신님’으로 시작했지만 여신님은 결국 다른 군사들도 위로하는 모두의 여신이 된다. 나아가 관객들을 위로하는 여신님이 된다. 그렇다면 배우 려욱의 ‘여신님’은 누굴까.
“지금 슈퍼주니어 멤버다 보니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많이 의지가 되요. 또 뮤지컬 할 때는 뮤지컬 사람들을 믿으면서 해요. 최근에 제 주변 사람들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공연 초대를 많이 하다보니 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챙겨야 할 사람이 많구나 싶었죠. 누구 한사람이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요.”
먼저 막공을 마친 려욱은 공연 자체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지는 않지만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배우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게 아쉬워요. 라디오 스케줄 때문에 끝까지 함께 못하고 중간에 가야할 때도 있었죠. 연습이 아니더라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연습 후 볼링 치고 떡볶이 먹고 치맥하고…이런 소소한 것들을 못했어요. 제 스케줄은 12시에 끝나는데, 12시면 모두 집에 돌아가서 자야할 시간이잖아요. (웃음)”
“또 제가 슈퍼주니어라서 아쉬운 점도 있었죠. 슈퍼주니어의 려욱이 아니고 뮤지컬 배우 려욱이었으면 관계가 지금과는 달랐을 거고 더 많이 친해지지 않았을까…. 인간 김려욱으로 더 많이 봐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함께 공연한 분들께 슈퍼주니어 려욱으로서의 이미지도 클 거예요. 시간이 흘러서 뮤지컬에 더 매진하게 된다면 더욱 친해지고 싶다어요. 그외에는 후외없이 해서 아쉬움이 남지는 않아요.”
려욱은 ‘여신님을 보고 계셔’ 통해 관객들이 순수함과 ‘함께’ 살아가는 힘을 얻어 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우리 모두에게는 순수함이 있어요. 그 순수함이 많이 없어지고 있죠. 자의든 타의든 잃어버린 순수함을 일깨워줄 수 있는 공연이예요. ‘내 주변에 여신은 누굴까’ ‘난 혼자가 아니구나’ ‘같이 살아가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공연이죠. 극중에 ‘다 같이 하면 할 수 있다’는 대사가 나와요. 관객 분들께서도 우리는 혼자가 살아가는 게 아니고 ‘함께’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차근차근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아가며 뮤지컬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배우 려욱. 더 다양한 색을 입을 기회가 많아 그의 변신이 더욱 기대된다.
“재균이(이재균)가 성우(전성우)와 같이 출연했던 ‘쓰릴미’의 ‘나(네이슨)’ 역할을 추천하긴 했어요. (웃음)”
“웃음을 줄 수 있는 역할, 재밌는 역할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제가 많이 참여하고 변신할 수 있는 2인극도 해보고 싶고요. 많은 뮤지컬들의 모토인 ‘꿈·사랑·에너지’ 등을 보여줄 수 있고, 또 순수함을 그리는 역할도 계속 하고 싶어요. 순호처럼요.”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배우 려욱이 출연하는 회차는 아쉽게 마무리가 됐지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오는 7월 2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