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9월 11일] 거품뺀 주유소 체인 필요하다

지난 1일부로 주유소 상표표시제(폴사인제) 고시가 16년 만에 폐지됐다. 이제 전국의 모든 주유소는 특정 정유사의 간판을 내걸었을지라도 다른 정유사의 기름을 받아 팔 수 있고 정유 4사의 기름을 모두 섞어서 팔 수도 있다. 그러나 고시 폐지 이후 열흘이 지난 아직까지도 기름을 섞어 파는 주유소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상표표시제 폐지 이후 기름값이 내려갔다는 소식도 들을 수 없다. 당초 정부와 주유소업계는 일선 주유소들이 값싼 기름을 그때그때 선택해 구입하고 도매 단위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덤핑 제품을 사서 팔 경우 휘발유 1리터당 40~50원의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당시부터 석유사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과거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주유소와 정유사 간의 독점 공급계약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유소들은 특정 정유사의 간판을 달고 그 회사 제품만을 팔겠다는 1~5년짜리 독점 구매계약을 맺는 대신 정유사로부터 장기 저리 대여금, 창업 및 마케팅 지원, 각종 장치장식, 외상 거래 등의 도움을 받아왔다. 때문에 상표표시제가 폐지됐다고 해서 일선 주유소가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정유 4사의 기름을 섞어 팔겠다”고 선언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혼합판매 주유소가 탄생하려면 정유사들의 지원으로부터 자유로울 만큼의 자본력을 갖춘 ‘가격파괴형’ 프랜차이즈 주유소가 태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차서비스ㆍ사은품ㆍ보너스포인트 등의 거품을 빼고 오로지 가격으로만 승부하는 새로운 혼합판매 주유소 체인이 등장할 경우 지금보다 휘발유 1리터당 100~200원까지도 싸게 팔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까운 일본만 가도 정유사 간판 없이 독자 브랜드를 달고 지역 단위에서 운영되는 주유소 체인들이 꽤 많다. 그들 모두 나름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물론이다. 현실적으로 국내 정유사들의 독과점적 공급 구조를 단시간에 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표표시제 폐지나 대형할인점의 주유소 겸업 허용 등으로 석유제품의 유통구조가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우선 주유소 판매가격에 낀 거품부터 빼고 ‘가격이냐 편의성이냐’를 소비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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