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무사안일에 과소비…사회전반 위기의식 실종

무사안일에 과소비…사회전반 위기의식 실종 [이제는 경제다] 3. 나사풀린 한국號 16일 오후 10시30분께 서울 강남 역삼동의 A룸살롱. 월요일임에도 불구, 17개의 방마다 손님들이 다 들어차 밴드와 노래소리가 요란했다. 3~4명이 마시는 하루저녁 술값이 호스테스들의 팁을 포함할 경우 2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룸살롱이 우후죽순처럼 문을 열고 있다. 지난 5월까지 새로 사업자등록을 마친 이런 고급유흥업소가 무려 5,000여곳에 달한다. 당연히 위스키 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상반기 동안 고급 위스키 소비가 지난해보다 40% 이상 늘었다. 세계최고의 증가율이다. 해외여행객의 증가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9월 말까지 387만여명이 외국여행을 다녀왔다. 지난해보다 23~24% 늘었다. 해외여행 자체야 전혀 비판할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사치성 외유가 늘고 씀씀이가 헤퍼졌다는 데 있다. 이들이 사용한 신용카드 금액이 상반기에만 6억7,200만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무려 80%가 증가한 것. 당연한 결과로 98년, 99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던 여행수지가 올해는 적자로 반전될 전망이다. 9월 말까지 7개 신용카드 회원들이 사용한 금액은 141조3,373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55조8,457억원에 비해 무려 3배가까이 늘었다. 「한국호」가 나사가 풀린 채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말로는 「위기」를 외치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설마 다시 외환위기때 처럼 풍비박산 나는 일이야 생기겠느냐는 안일함이 사회전반에 가득하다. 이와 함께 공동체적 질서보다는 집단이익을 앞세우는 내몫찾기도 사회분열을 재촉하고 있다.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3개월째 이어지는 지리한 공방도 그렇고 노동계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한국노총은 25일부터 노사정참여를 중단하고 오는 12월15일 전면파업에 돌입한다고 예고해 놓은 상황이다. 그러면 이같은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어떤가. 경제가 무너진다고 여기저기서 경고음을 발해도 오로지 관심은 기싸움에만 쏠려있다. 한시가 급한 각종 민생현안들을 내팽개쳐두고 야당은 부산에서, 대구에서 목소리만 높였고 여당은 이를 정치공세로 치부, 극한대립을 이어갔다. 영수회담 후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도대체 시장에서 정부의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 경제장관들이 뚜렷한 소신없이 그때 그때 수시로 말을 바꾼 결과다. 게다가 아직도 거시지표 등을 들어 경제상황이 결코 어둡지 않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리더십이, 정부의 영(令)이 설 리가 없다. 단지 경제적인 위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 난맥상」이란 말이 꼭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 있는가. 과소비가 계층간 위화감을 부추기고, 제몫찾기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익집단의 우격다짐이 사회적 합의를 가로막고 있더라도 여전히 이 나라의 장래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외환위기의 그 막막했던 터널을 헤쳐나온 소중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전국민이 손가락의 금반지를 빼고, 목걸이를 풀어놓던 그 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경영전략본부장은 『정부가 본격적으로 경제살리기에 나서고 정치권도 2차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 조성을 통과시켜 경제의 불확실성을 걷어낼 경우 우리는 다시 성장가도를 달릴 충분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오철수기자 입력시간 2000/10/17 18:33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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