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ㆍ이과 통합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노태희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선택하는 문·이과를 통합하는 교육부 안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문·이과생이 각각 과학과 사회과목을 외면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오는 2017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융복합적 인재양성을 위해 문·이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실질적으로 수능과목이 늘어나 학생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일부 과목의 학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과목 편식 없애야 전인교육 가능
입시 개선해 학습부담 덜어줘야


교육부가 케케묵은 숙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시대착오적이고 반(反)교육적인 문과와 이과 구분을 없애는 수능 개편안을 내놓았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관행을 뜯어고치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학교 현장의 준비부족과 학생의 학습부담을 핑계로 교육계와 학부모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학력저하를 걱정하는 대학도 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다. 문ㆍ이과 구분 철폐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이기도 하다.

제도적으로 문ㆍ이과 구분은 오래 전에 없어졌다. 지난 1993년 확정된 제6차 교육과정에서 문과와 이과 구분은 분명히 철폐됐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른 통합교육을 담당할 '공통사회'와 '공통과학' 교사도 양성했다. 이미 20년 전에 사망선고를 받은 잘못된 관행이 아직도 학교 현장에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은 교육부와 교육학자들의 직무유기와 책임회피 탓이다. 수능개편 등 후속 조처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수준별 평가를 핑계로 도입한 '가'형과 '나'형 수능으로 당연히 사라졌어야 할 문ㆍ이과 구분을 교묘하게 위장했다.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부담을 감당하기 싫었을 뿐이다.

문ㆍ이과 구분이 학생의 적성을 키워주고 학습부담을 줄여주는 친학생적 제도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문ㆍ이과 구분 교육의 목표는 선명하다. 오로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능인력'을 '값싸게' 길러내는 것이다. 체육 특기자에게 억지로 수업을 면제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포츠 선수로 성공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체육 특기자는 현실적으로 장래를 위한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문ㆍ이과 구분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형편도 다르지 않다.

문ㆍ이과 구분 교육은 학생의 적성 중 절반을 강제로 포기시키는 반교육적 제도다. 교육에서는 잘하는 것을 키워주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는 노력도 중요하다. 감성적인 문과형 학생에게도 논리적·합리적 사고력과 과학적 세계관을 가르쳐야 하고 논리적 이과형 학생에게도 문학적 감성과 역사ㆍ지리에 대한 상식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전인교육이다.


문ㆍ이과 구분이 학습부담을 줄여준다는 생각도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 아이들을 짓누르는 과도한 학습부담은 불합리한 대학입시와 사범대의 학과이기주의에 따른 과도한 과목 쪼개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개편 때마다 아귀다툼을 벌이는 과목 담당 교사들의 배후에는 교사 양성기관의 교육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과도하고 비효율적인 심화교육의 수준을 낮춰주면 불필요한 학습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학력저하에 대한 걱정도 공연한 것이다. 기능인력 양성을 핑계로 하는 과도한 심화교육은 절대다수인 중하위권 학생에게 쓸모도 없고 무의미한 부담이다. 특히 수학이 그렇다. 어려운 수학ㆍ과학이 상위권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상위권 대학은 지금도 신입생의 학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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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유별나게 융합을 강조하는 것도 사실은 절름발이식 문ㆍ이과 교육의 폐해 때문이다.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잘못된 착각으로 편식을 강요해놓고 뒤늦게 영양불균형을 바로잡겠다고 허둥거리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여전히 편식이 당연하다고 우기는 교육학자들과 대학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21세기는 문ㆍ이과 구분을 거부하는 융합의 시대다.

● 반대 노태희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

융합과학만 선택 땐 기초학력 저하
사교육 증가 등 부작용만 키울 우려


교육부의 대입제도 발전방안 가운데 수능을 문ㆍ이과 구분 없이 치르는 융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이로 인해 과학교육이 부실해지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

그동안의 교육과정과 입시제도 변화과정에서 이공계 학생의 기초학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과학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고 수업시간과 수능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크게 줄여왔기 때문이다. 사교육 열풍에 대응하기 위해 학습량을 줄여야 했지만 과학과 사회에서만 지나치게 학습량을 축소한 현상황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양성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학의 교양과학은 고등학교 과학과 밀접히 연계돼 있으며 이공계의 많은 전공과목들도 고등학교 과학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공계 대학에 진학할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충분히 학습해야 한다. 실제로 과학Ⅱ를 공부하지 않은 신입생은 수준이 국제적으로 비슷한 교양과학 과목들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가 매우 어렵고 수강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향이 높으며 심지어 과외를 받기도 한다.

올해 수능에서 과학과목의 선택을 2개로 줄였는데 지난 6월 수능 모의평가에서 응시생들이 쉬운 과학Ⅰ에만 더 많이 몰렸다. 그런데 이마저도 없애고 문제가 많은 융합과학만 수능과목으로 지정할 경우 종종 파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과학수업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결국 융합안에 따라 학생들은 입시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융합과학 과목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과학교과는 소홀히 해 기초과학에서 학력이 저하될 것이다. 융합은 관심 분야의 기초지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와 접목해야 가능하므로 이번 융합안은 기초지식을 감소시켜 융합교육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이공계 대학 진학생의 학습 준비도도 떨어뜨릴 것이다.

또한 2년째 시행돼온 융합과학 과목에서 이미 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융합과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여러 과학과목들의 주요 개념을 이해시키고 이를 융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다. 스토리텔링을 위해 과학ⅠㆍⅡ에 있는 개념과 용어들이 체계적 설명 없이 뒤섞여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생들이 이 과목을 통해 과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탐구능력이나 통합적 내용과 관련된 문제를 만들기 어려워 그동안 시행한 학력고사나 학교 시험은 분야별 개념평가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융합과학을 가르친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대다수가 융합과학을 수정(61%)하거나 폐지(36%)하자고 했다. 이런 융합과학을 현장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수능과목으로 지정한다면 사교육 증가만 야기할 것이다.

문ㆍ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나라에서도 이공계 대학에 가려면 미국의 SAT나 영국의 GCSE 등 공공시험에서 융합과학이 아닌 과학과목들을 더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상위권 대학의 경우 학과마다 추천하는 필수과목의 성적과 AP과목 이수를 입학사정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문ㆍ이과를 구분하지는 않지만 이공계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이 과학의 기초지식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융합적 사고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을 35% 늘려 앞으로 5년간 92조원을 투자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려 하는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기초가 되는 과학교육 환경을 더 이상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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