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9월 10일] 창조적 자본주의

부자 마케팅에 진절머리가 날 때도 됐는데 사람들은 발상의 전환을 하려 들지 않는다. 리셉션은 꼭 W호텔에서 해야 하고 신차 발표회는 꼭 청담동에서 해야만 할 것 같은 부자 눈치보기가 극에 달했다. 푼돈 고객 100명보다 부자 고객 한 명이 훨씬 도움된다는 상도(商道)는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이런 트렌드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지 꽤 된 필자에게 인도 태생의 미시건주립대 교수인 프라할라드의 경영철학은 정말로 신선한 것이었다. “전세계 인구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의 니즈(Needs)를 공략하라!” 코 묻은 돈의 위대함이랄까. 일반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저소득층은 소비를 할 만한 충분한 돈이 없어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폄하한다. 그러나 프라할라드 교수는 저소득층의 인구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들을 주목할 때 새로운 시장이 개척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의 소유와 총량에 주목하는 세상의 흐름에 반기를 든 사람은 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고경영자를 사임하고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다. 그는 최근 각종 기고와 강연을 통해 “자본주의는 인류의 삶을 향상시켰지만 현재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그 혜택으로부터 소외됐다”면서 기업과 정부ㆍNGO가 협력해 빈곤층 퇴치에 경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한 자본주의가 돼야 체제 자체가 영속할 수 있다며 이를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로 명명했다. 굳이 저소득층이나 사회운동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창조적 자본주의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발견된다. 몇 해 전 미샤 등 초저가 화장품 업체들이 비싼 용기와 마케팅 비용의 거품을 없앤 합리적 가격으로 시장을 휩쓸었다. 또 백화점들이 명품관을 단장하면서 시장을 선도하겠노라고 공언할 때 지마켓은 유통 마진의 거품을 없앤 9,900원짜리 합리적 상품을 소비자들의 욕구를 흡수하며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또 대치동 학원가가 언론을 장식할 때 메가스터디는 지방 산간 학생들에게까지 온라인 강의를 공급하며 학원시장을 평정했다. 1만원은 하찮아도 만 명의 1만원은 1억원이 된다. 문제는 세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는 우리들의 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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