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영화] '하얀 풍선'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오디세이」는 미지(未知)와의 조우가 아름답다. SF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만난 생명은 뜻밖에도 지구인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말해준다. 만남이 있기 전에는 방황과 두려움이 뒤따른다.테헤란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소녀 라지에(아이다 모하마드카니 분)는 새해 전날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닌다. 시장에서 보았던 살찌고 예쁜 금붕어 때문이다. 이란의 설날은 3월 21일. 마호메트가 반대파를 피해 무사히 도피한 것(헤지라)을 기념하여 그날을 새해로 여긴다. 이란 사람들의 새해맞이에는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금붕어가 필수적이다. 너나할것 없이 금붕어를 준비한다. 그러나 라지에가 좋아하는 금붕어는 언젠가 보았던 단 한마리뿐이다. 이란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밑에서 공부한 자파르 파나히가 만든 「하얀 풍선」은 한 어린 소녀의 금붕어찾기를 담은 영화이다. 러닝타임은 설날 전 1시간 28분 30초. 영화속의 시간은 실제 시간대와 동일하다. 엄마를 졸라대던 라지에는 큰 돈을 얻어 시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뱀장수의 꼬임에 빠져 잠시 돈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금붕어 상점에 갔으나 돈을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눈치챈 라지에. 소녀의 귀한 돈은 하수구에 빠져 있었다. 영화는 라지에가 오빠와 함께 하수구에 빠진 돈을 되찾아 금붕어를 사러 뛰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짧은 시간에도 라지에는 많은 사람과 만난다. 마치 율리시즈가 폭풍우와 괴물들을 만나면서 여행을 계속하듯이. 라지에의 돈을 훔치려다 만 뱀장수, 고향에 돌아갈 돈이 없어 혹시 하수구에 빠진 라지에의 돈이라도 빌릴수 있을까 하는 군인, 손님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 소녀의 꿈이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양복점 주인, 그리고 풍선을 파는 아프카니스탄 피난민 소년 등등. 그러나 테헤란 그 어느 구석에서도 라지에를 속이고 돈을 앗아가는 나쁜 사람은 없다. 보통 사람들. 그들의 일상은 지극히 범상하지만, 금붕어 한마리를 찾으려는 라지에의 하루는 이란의 현재를 담아내는 축약판이었다. 그 곳에는 오늘의 이란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요령있게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 「하얀 풍선」의 미덕은 어린 소녀의 눈높이에 충실하다는 것. 라지에 역을 맡은 모하마드 카니의 연기가 눈부시다. 어린이의 눈으로 이란 사회를 해부하는 솜씨도 뛰어나고 일상을 담으면서도 야릇한 긴장과 해학을 유도하는 감칠맛나는 영화이다. 19일 시네코아, 동숭시네마텍 개봉.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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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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