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우리 경제가 중진국 트랩(trapㆍ함정)에 빠졌다는 가설이 검증된 바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러한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화이트칼라 인력의 수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근로자들의 일에 대한 동기 유발이 미약하고 근로 의욕이 저하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근년에 들어 일부에서 사무직보다 생산직의 급여가 더 높게 나타나는 소위 사무직과 생산직간의 역전(逆轉) 현상이 나타나자 사무직의 근로 의욕이 크게 저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정된 수의 우수한 화이트칼라 인력을 싱가포르ㆍ대만ㆍ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에서 수입할 경우 대졸자 등 국내 화이트칼라와의 경쟁이 예상되고 이 과정에서 국내 근로자들의 일에 대한 동기 유발이나 근로 의욕이 제고될 것이다. 이 경우 노동공급 측면에서 화이트칼라의 동기 유발이나 근로 의욕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채용을 꺼리던 풍토가 사라지고 오히려 화이트칼라의 고용 창출이 증가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외국의 화이트칼라 인력의 수입으로 내국 근로자들의 근로 의욕이 제고된다면 고용 창출이라는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단기적으로 보면 외국인력 수입이 화이트칼라의 취업을 어렵게 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화이트칼라의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년실업이 문제시되고 나아가 신규 대졸자에 대한 고용 창출이 부진한 이유는 노동 수요, 즉 경기침체나 정보화시대의 진전에 따라 성장-고용탄력치가 낮아지는 데에만 그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장-고용탄력치는 성장이 1% 증가할 때 고용이 몇 %나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만약 이 탄력치가 0.3이라면 성장이 추가적으로 1% 증가할 경우 취업자 수를 약 2,100만 명으로 보면 6만3,000명(2,100만명X0.003)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동 수요 측면에서 보면 청년인구의 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경기침체와 경제의 고용흡수력이 낮은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노동공급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규 대졸자들이나 또는 취업재수생들의 채용을 기업에서 기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들의 직장에 대한 애사심이 낮고 근로 의욕이 부족하다고 기업이 느끼기 때문이다. 이 결과 대졸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버젓한 직장(decent jobs)'의 경우 대졸자보다는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업의 대학교육에 대한 평가를 전경련이 인사담당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들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기술이 기업의 요구 수준을 100점 만점으로 했을 때 평균 26점에 불과하고 10점 이하로 혹평한 응답자도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목별로 보면 전문지식/기술은 평균 18점, 인성/태도 부문은 27점, 기초능력/지식은 35점으로 모두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 기업들은 경력사원 비율을 늘리거나 해외 우수인력 확보에 눈을 돌리고 있다. 즉 대졸자는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쓸 만한 인재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대학교육에 대한 기업의 평가가 낙제점이라는 것은 성장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신규 대졸자에 대한 고용 창출이 이뤄지지 않을 개연성이 큼을 의미한다.
일에 대한 프로 근성이나 근로 의욕 면에서 싱가포르ㆍ대만ㆍ홍콩ㆍ말레이시아 등의 화이트칼라들이 우리나라 근로자들에 비해 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싱가포르나 홍콩의 경우 전반적인 임금 수준은 우리나라에 비해 높으나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 수준이 높은 것을 감안할 때 화이트칼라 인력수입을 개방했을 경우 이들 국가들의 우수인력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사려된다.
해외 화이트칼라 수입을 “단계적ㆍ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 이는 국내 근로자들에게 충격요인으로 작용해 일에 대한 동기 유발과 근로 의욕이 제고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이다. 우리 경제는 중진국 트랩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러한 외부적인 충격을 감당하고 그 반사적 이익을 극대화 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에는 자본에 비해 인력의 국가간 이동이 제한적이었으나 유럽연합(EU) 통합 이후 국가간 인력의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눈앞에 놓인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러한 외부적인 충격을 회피할 경우 우리 경제는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 이라는 점을 대승적 입장에서 생각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