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수백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개입한 혐의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국제 체육계와 경제계에 미칠 영향을 감안했다고 밝혀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박 전 회장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라는 신분을 적극 고려한 것은 결국 스포츠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재벌 관련 수사에서 검찰이 스스로 발목을 잡힌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IOC 위원이라는 직책이 검찰 수사에서 중요 변수로 등장함으로써 안기부 도청사건이나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의 피고발인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이 IOC 위원이면서 국내외 체육계나 경제계에서 박 전 회장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현재 신병 치료차 미국에 체류하고 있고,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기때문에 구체적인 혐의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귀국 후 검찰 조사가 불가피한 만큼 고발된 내용과 관련된 범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검찰이 박 전 회장과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벌 총수들 대부분이 체육계, 예술계 등 각 분야에서 민간 외교 사절로 활동하고 있고, 국내외 경제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이번 사건으로 검찰이 스스로 한계선을 그었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은 당초 구속 기소가 유력했던 박 전 회장이 맡고 있는 각종 직책과 역할을 선처 배경으로 삼았음을 시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상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동계올림픽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유치 등 현안이 있는데 대책 없이 구속 수사해서 재판 받게 하면 국익에 심대한 손상을 끼칠 수 있어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IOC 위원은 스포츠계에서는 대통령으로 통할 정도의 최고 명예직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자 없이 입국이 허용되는 등 국빈급 예우를 받는다.
현재 이건희 회장 관련 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과 금융조사부는 이 회장 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접촉 대상이 아니다'라며 극도로 말을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검찰 관계자는 "두산 사건 결과는 이 사건 고유의 결정이지 일반적 원칙이나 사건 처리 기준을 제시한 게 아니다"며 "재벌 봐주기라면 남매 7명 중 4명을 기소할 수 있겠느냐"고 말해 도청, 에버랜드 사건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전례는 유사한 사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두산총수 일가에 대한 이번 `솜방망이 처벌'은 향후 이 회장 조사와 처리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