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본시장 새패러다임을 찾아서] 5.(끝) 선물시장의 메카 시카고

개장을 알리는「삐-」하는 벨소리가 울리자, 피트(매매장소)에 나와 대기하고 있던 하늘색, 빨간색 등의 재킷을 입은 수천명의 선물브로커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른다. 노란색 재킷을 입은 메신저(주문 전달원)들이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컴퓨터주문과 전화주문용지를 움켜쥐고 장내를 뛰어다닌다.개장 10분후인 7시 30분. 우려했던 인플레가 당초 예상보다 낮다는 뉴스가 벽면 스크린에 나타났다. 순간 옆사람 말도 들릴까말까한 소음속에서 선물브로커들의 수신호가 더욱 바빠진다. 하락세를 보이던 30년만기 미국채(TB)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들간에 체결된 가격은 통신회선을 타고 순식간에 전세계로 날아간다. CME의 윌리엄 벅스 홍보이사는 『콩 밀 소 돼지 등 곡식과 가축은 물론 주가와 금리, 달러 엔에서 남아프리카의 란드화까지 수십개국의 외환이 거래된다』고 말한다. CME는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와 함께 세계 선물거래량의 60%를 중개한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선물시장을 포함한 파생상품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금융선물거래가 90%를 차지하는 CME의 1일 선물거래실적은 세계최대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 실적의 30배가 넘는다. 세계 곡물유통의 중심지인 시카고는 19세기 중반 곡물가격의 변동성을 줄여보고자 곡물상품 선물시장 개설을 시작으로 1970년대 들어 세계 최초로 금리주가 등 금융선물에도 손을 대면서 세계 금융선물의 가격결정을 선도하고있다. 방대한 유동성과 거래의 투명성을 무기로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 트레이더들을 시카고 선물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초엔 컴퓨터를 통해 24시간 거래가 가능한「글로벡스」체제를 구축해 자국의 금융상품은 물론 세계 각국의 주요 상품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글로벡스지수중 주가지수선물인 S&P500과 나스닥100지수는 각국의 주식시장에 실시간으로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며 세계 주식투자자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카고는 상품가격의 변동을 방지해 안정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세계 도처의 헤저(곡물업자, 뮤추얼펀드, 금융기관 등)와 헤저로부터 리스크를 넘겨받아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자(개인 딜러, 헤지펀드 등)를 연결해주는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간 물자·자본의 자유이동과 시장경제를 세계각국에 전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국제금융시장의 가격변동위험을 상품화해 톡톡한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선물시장을 돈놓고 돈먹기의 투기판이라고 폄하한다. 미국은 그러나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만들어줌으로써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로 자리매김했다. 사쿠라델셔 선물회사의 안동현 트레이더는 『시카고 선물거래소에는 수십명의 감시반원들이 매일 플로어를 돌며 부정한 거래를 적발·방지하고 있다』며 『탈법 불법 사기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투명·공정한 시장이다』고 말한다. 매달 인플레 고용지수 등 주요 경제지표 17개가 정확히 아침 7시 30분에 발표되는데, 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이들 지표관련 정보를 아무도 먼저 입수할 수 없게 함으로써 시장의 신뢰성, 보안성이 철저히 확보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거래소측이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투자원금의 수십배 손실을 볼수 있는 선물시장의 특성상, 리스크관리를 철저히 행하고 있다는 점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있는 이유중 하나다. 고객의 투자실패는 거래소내 회원사인 담당 선물회사(FCM)가 반드시 책임지도록 한다. 지난 98년 선물회사인 그리핀은 모 고객이 투자한도를 초과해 투자했다가 실패, 문을 닫아야했다. 70년대 3,000개가 넘던 선물회사는 거래소측의 엄격한 회원관리와 수수료 인하경쟁이 부는 가운데 중소 선물회사가 수없이 쓰러지며 99년말 현재 200여개로 줄어들었다. 철저한 시장감독과 자유경쟁 논리로 자본금이 크고 엄격한 리스크관리를 적용한 회사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지난 12월 카 선물회사는 10억달러 규모의 뮤추얼펀드가 선물헤지를 위해 계좌개설을 요구했으나 응해주지 않고있다. 뮤추얼펀드의 과거 실적과 자산내용을 좀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게 카측의 입장이다. 거래 수수료 실적 쌓기에 급급한 한국선물회사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CME는 리스크관리 강화와 함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신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주가지수선물. S&P500, 러셀2000, NYSE1400, AMEX 등 수십종에 이른다. 지난해는 S&P500과 나스닥100이 호가단위가 커 투자부담이 있는 것에 착안, 호가단위를 축소한 E-미니S&P500과 E-미니나스닥100을 개발, 매달 최고거래량을 경신하며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카고=이병관 기자COME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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