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1일] 어떤 파산


스터츠 베어켓.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까지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스포츠카다. 스터츠(Stutz)사의 대주주인 앨런 라이언(Allan Ryan)도 비슷했다.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도, 사업도 발군이었으니까. 1920년 1월부터는 남다른 관심도 끌었다. 주가전쟁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싸움의 대상은 스터츠사의 주식. 주당 100달러에서 한달 사이 35% 이상 오르자 큰손들이 달라붙었다. 하락반전을 예상한 이들의 공매도와 대주(貸株) 공세로 주가가 흔들리자 라이언은 자사 주식을 사들였다. 매매공방 속에 주가는 1920년 4월 초 391달러선까지 치솟았다. 투기세력의 매입단가는 130달러. 주당 270달러씩의 손해로 큰손들의 줄파산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증권거래소가 주가급등 진상조사에 나섰다. 문제는 거래소가 투기꾼과 한통속이었다는 점. 조사위원회는 스터츠사 주식을 상장 폐지하고 라이언이 맺은 매매계약까지 무효화했다. 라이언은 거래소 내부관계자 9명이 공매도에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맞섰다. 궁지에 몰린 큰손들은 550달러라는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당 420달러씩 손해를 본 것이다. 라이언의 승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거래소의 끈질긴 보복으로 라이언은 1922년 7월21일 3,243만달러의 빚을 안고 파산했다. 주가가 50달러만 유지했어도 회생할 수 있었으나 큰손들의 농간에 시세는 단 5달러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억울한 파산을 피할 수 없었다. 돈과 정보를 가진 자들의 천국이던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작전과 불법이 사라진 것은 1929년 대공황 직후 실시된 개혁 이후다. ‘빨갱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증시를 개혁했던 루스벨트가 아니었다면 미국 증시는 더 오랫동안 복마전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