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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기습공격'을 감행한 이튿날인 5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전략1팀을 중심으로 대응회의를 여는 등 종일 부산한 모습이었다. 현재 삼성 내부에서는 헤지펀드의 공격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는 자성(自省)과 더불어 방어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비록 조기 경보에는 실패했어도 빠른 수습마저 해내지 못하면 이번 사태가 단순히 계열사 문제를 넘어 그룹 지배구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삼성은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주요 주주를 직접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의 지배구조를 보면 대주주인 삼성SDI를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13.99%에 불과하고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역시 9.98% 수준이어서 삼성의 손을 들어줄 우호세력 집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외국인 지분이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엘리엇의 공격 이전인 지난 3일 32.11%였던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은 4일 33.08%로 1%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앞으로 추세적인 오름세를 보일 가능성이 커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일 수도 있지만 향후 엘리엇의 행보에 따라 언제든 적대세력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이 삼성에는 부담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을 결의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1조5,000억원을 넘길 경우 합병을 취소하기로 했는데 이는 삼성물산 주식 기준 17% 수준이다.
엘리엇이 앞으로 10% 가까이로 지분 보유를 늘리고 여기에 더해 7%의 외국인 우호세력만 모으면 합병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따라 양사는 최고경영자(CEO)인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이 직접 발로 뛰며 외국인을 상대로 한 대면(對面) 설득 작업을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주요 주주 설득과 더불어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확고한 '비전(vision)'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주는 작업에도 좀 더 공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물산 주식을 계속 갖고 있을 때 장기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소액주주는 물론 외국인 역시 엘리엇의 움직임에 장단을 맞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다음달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반대세력을 결집해 합병을 무산시키거나 합병반대 소송을 걸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의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는 점을 이번 기회에 시장에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 역시 "통합 삼성물산은 의식주휴(衣食住休)에 바이오를 더한 시장 선도기업으로 탈바꿈해 오는 2020년 매출 60조원을 달성할 계획"이라며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런 계획을 전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합 삼성물산의 성장 '마스터플랜'에서 핵심축을 담당할 사업부문은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이끄는 패션 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합병 결의안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1조9,000억원이던 패션 부문 매출을 2020년 10조원으로 5배 이상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건설(16조2,000억원→23조6,000억원) △상사(13조6,000억원→19조6,000억원) △식음료(1조6,000억원→3조5,000억원)의 성장 목표와 비교해 확연히 높은 수준이다. 제일모직은 이와 관련해 "51개국에 128개 해외 거점을 둔 삼성물산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제일모직의 패션 노하우를 결합해 중국 등 성장성이 큰 시장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직접 지목한 바이오 사업도 통합 삼성물산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 부문의 2020년 매출 목표는 1조8,000억원 수준이지만 가장 성장잠재력이 크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합병회사는 삼성의 대표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 향후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할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달 세계에서 처음으로 당뇨치료제 '란투스'를 복제한 바이오시밀러 'SB9'의 임상시험을 끝낸 데 이어 올 11월 유럽의약품청(EMA)에 판매허가 신청 허가를 앞두고 있는 등 사업 활성화를 착착 준비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여부 △이서현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계열 분리 문제 등에 대해 삼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가 장차 기대 수익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핵심 요인인데 지금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삼성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투기세력이 개입할 수 있게 만든 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 더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삼성과 정부가 함께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