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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금융위기를 촉발한 그리스 재정파탄의 원인은 침몰하는 경제를 보면서도 제때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지 않고 단기적 포퓰리즘 정책을 지속한 데 있다. 기업 지원ㆍ육성 노력을 하지 않고 나눠먹기식 복지에 탐닉하다 고통을 자초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 정치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실체조차 불분명한 경제민주화 구호가 거세지만 헌법이념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헌법에는 '개인ㆍ기업의 경제상의 자유ㆍ창의 존중(제119조 제1항)'이 경제질서의 기본이며 '국방ㆍ국민경제상의 간절한 필요로 인해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ㆍ공유화하거나 경영을 통제ㆍ관리할 수 없다(제126조)'고 명시돼 있다. 자율경영을 보장하되 서민ㆍ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를 향해 나아가라는 것이다. 기업 옥죄기ㆍ해체는 헌법상의 경제질서가 아니다.
주식매각 강제 등 자유ㆍ평등권 침해
최근 시도되는 몇몇 법안은 도를 넘었다. 헌법적 경제가치 훼손까지 우려되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다. 정부안에 이어 의원안 두 건이 연이어 국회에 제출됐는데 의원안에는 정부안 마련과정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삭제된 대주주 적격성심사 등이 포함됐다. 대주주의 자격을 주기적으로 심사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주식매각을 강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규제는 국민의 재산권과 금융회사의 경영안정성을 명백히 침해한다. 대주주의 책임경영이 정착된 우리 기업문화에서 주주와 금융 이용자에게도 불안과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 금융회사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위축시키고 기존 투자마저 철수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선진국에는 추상적 수준의 규제만 있거나 아예 이런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주주나 시장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대주주라도 경영과 무관한 개인의 과오로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주식매각을 강제 당할 경우 누가 기업을 일궈 자본을 축적하려 힘쓸까. 건전성 규제ㆍ감독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우리 법규는 장식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현행 법규에는 금융회사 부실 등 경영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민사책임이나 형사책임을 묻는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 옥상옥의 규제, 기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는 장치가 과연 우리 헌법상 경제질서나 기본권 제한 법리에 부합하는가. 또 주주 등 시장참여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인가.
대주주 적격성심사제도 도입과 더불어 사외이사가 금융회사를 사실상 경영하도록 해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제도를 강제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사외이사는 본업이 따로 있고 비정기적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전문성ㆍ책임성에 한계가 있다. 사외이사가 다수인 이사회가 경영 전반을 좌우할 경우 경영 효율성과 판단의 신속성이 저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외이사 중심 이사회 강제 재고를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는 신속ㆍ정확한 경영판단은 전문성을 갖춘 경영진이 행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회사 실무에 비춰볼 때 사외이사가 경영ㆍ견제 권한을 동시에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금융권의 탐욕은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다. 그리고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서 봤듯이 일부 대주주의 전횡도 큰 암 덩어리다. 그러나 그 비리와 부패도 실정법을 잘 집행하지 않고 정치권이나 실세 관료들이 영합한 것이 실체다. 우리의 헌법적 가치질서를 무시하는 법률을 제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잡초를 잘 뽑도록 할 일이지 농작물을 뒤집어놓아서는 안 되는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