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제로기'의 비애


1941년 12월7일을 미국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일본이 하와이섬의 진주만 해군기지를 기습 폭격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선박과 전투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즉각 선전포고를 선언하면서 그날 이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이어진 세계 2차 대전으로 인류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희생을 치렀다.

전쟁 당시 일본은 승전을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신형 '제로'전투기와 항공모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중 항공모함을 가진 나라는 영국·미국·일본밖에 없었다. 독일은 항공모함보다 잠수함 U보트를 개발해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군수물자 수송만 차단하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아돌프 히틀러의 방침에 따라 항공모함을 개발하지 않았다. 제로 전투기는 미국의 백만장자이며 조종사인 하워드 휴즈가 자신의 비행속도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 직접 설계 제작한 비행기를 일본 해군이 몰래 모방해 탄생했다. 또 영국에서 도입한 구식 항공모함을 또 베끼고 개조해 일본식 항공모함을 만들었다. 그 전투기와 항모는 대부분 미쯔비시중공업에서 제작됐는데 그 당시에는 세계 최대 조선 기계공장이었다. 지금 세계 최대인 우리나라 현대중공업 공장의 4분의1 크기였다고 하니 굉장한 규모였음에 틀림없다.


막강한 제로기와 항모를 갖추고도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은 틀림없이 진다고 전쟁 불가론을 주장했고 오히려 육군이 강하게 밀어붙여 진주만 공격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육군이 최고 권력을 확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2차 대전으로 미군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해병대를 제쳐놓고 육군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마치 영화배우처럼 혼자 영웅인양 언론을 장식했었던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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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협적인 제로가 70여년이 지난 지금 원형 그대로 해마다 열리는 미 리노에어쇼에 나타난다.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리노시 외각 스테드비행장에는 매년 가을 일주일 동안 각종 비행기 속도 경기 및 초창기의 복엽기인 와코와 스테어맨 등은 물론 최신형 F-35기까지 참가해 각종 묘기를 부린다. 이 쇼에 나온 제로기는 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통치하는 동안 전리품 가운데 성능이 괜찮은 기종으로 미국 본토에 보낸 3대 중 하나라고 한다.

필자가 비행기에 가까이 가서 만져본 결과 모든 날개와 동체 접합부는 정교한 리벳식이다. 그 품질이 너무나 우수해 필경 노동력이 엄청나게 드는 수작업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또 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조선의 청년들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또 최근 초음속 전투기와 달리 날개의 인장력이 걸리는 부분은 합성천으로 만들어 무게를 가볍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6·25 한국전쟁 중에 소련이 미그15기에 사용한 것과 같다. 이 제로기는 최근 항공학자들이 선정한 '세계를 변화시킨 항공기 50기' 의 하나로 선정됐으며 과거 우리 공군이 쓰던 F-51머스탱기와도 대적할 만한 속도와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로기 설계에 조선의 공학자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했으니 비운의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항공역학을 활용해볼 수 있는 모국이 없었으며 조국을 위해 이바지할 기회도 빼앗긴 채 제로기를 만들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7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국내기술로 개발한 고등훈련기 T-50도 만들어 수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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