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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술렁이고 있다.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화 전면사용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유로화가 통용될 경우 유럽은 사실상 한 개 경제권역으로 통합된다.
2002년 1월1일부터 실시되는 유로화 사용을 앞두고 EU 회원국들은 사전 준비에 한창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3,500억 유로(1유로는 1,135원)에 달하는 회원국 지폐 및 주화를 2개월동안 모두 회수해서 500억개의 주화와 145억장의 지폐를 공급할 계획이다.
새로운 계약은 유로화로 표시해야 하고 수표, 신용카드 등 비현금 지급도 유로화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개인들의 은행 구좌들도 모두 유로화로 전환해야 하고 신규 구좌도 물론 유로화로 개설해야 한다. 임금과 연금도 유로화로 받게 된다.
브뤼셀 시내에서 만난 피셔씨는 “약간 혼란스럽지만 유로화 유통이 전체적으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다”며 유로화 전환에 강한 기대감을 보였다.
유로화 통용은 유럽대통합이라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추에 불과하다. EU는 오는 2004년까지 유럽 28개국을 통합해 총인구 5억명을 가진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다.
짧게는 내년 유로화 전환, 길게는 회원국 확대를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 본부의 1,000여명의 관계자들은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보내고 있다.
EU본부의 가르시아 베르세로 세계무역기구(WTO) OECD과 부과장은 “세계통상질서의 주도권 확보여부가 최대 관건”이라고 EU 확대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2002년말까지 헝가리 등 (가입협상 진척이 두드러지고 있는) 선두그룹과의 협상을 가속화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년 유로화 전환이후 회원국이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EU 정상들도 2004년 ‘거대블럭’ 목표를 위해 오는 12월 EU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에서 의미있는 모임을 갖는다. EU 정상들은 이곳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유럽통합 확대에 대한 협의방식, 일정 등 전반적인 협의에 관해 ‘정상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 정상선언은 EU의 확대재편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통상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최대화 주EU대표부 대사는 “조만간 EU가 수퍼파워를 발휘할 날도 머지 않았다”며 “유로화 전면 도입이 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EU가 2005년 이후 세계최대 경제블럭으로 재탄생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각국은 EU가 거대한 몸집을 갖추기 전에 양자간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갖가지 긴박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7월, 멕시코가 EU와 FTA를 발효시킨 이래 이스라엘 등 중동국가, 알제리ㆍ모로코 등 북부 아프리카국 등도 2010년을 목표로 EU와 FTA 체결을 모색중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EU에 ‘FTA 손짓’을 열심히 흔들고 있다.
주EU 한국대표부 윤성덕 서기관은 “아시아, 중동 등 일부 국가들이 EU 재편에 합류하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들 국가들의 경제통상 전문외교관 파견이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EU라는 거대한 시장을 놓치지 않기 미리 통상외교전에 뛰어들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또 유럽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제블럭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남미공동시장(MERCOSUR), 아시아자유무역지대(AFTA) 등도 EU와 통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출범한지 40여년만에 이뤄진 이 같은 EU의 변화는 수퍼파워의 가능성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EU는 현재 우리의 3번째 교역 파트너일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해외투자 주체로 부상했다. 특히 지난해말까지 EU의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투자는 201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외국인 투자액의 29.4%를 차지하고 있다. 98년이후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투자유치국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이러한 EU시장을 ‘관리’하기 위해 최 대사를 포함해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통상전문 외교관들이 파견돼 있다. 하지만 교역 및 투자규모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한ㆍEU는 조선, 자동차, 의약품, 화장품,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상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한ㆍEU간 조선문제가 첨예했던 지난 6월에는 거의 매일 회의로 밤을 지새웠을 정도라고 대표부 한 관계자는 전했다.
최 대사는 “그러나 한ㆍEU간 무역과 상호 투자규모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통상문제는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EU가 우리나라 최대의 투자국이고 미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를 이끄는 지역임을 고려해 EU와 업종별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EU는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EU가 ‘세계 최대 경제블럭’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적하다. 첫번째 장애물이 바로 내년 1월 유로화 전환이다. 2여년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유로화 전환을 앞두고 물가상승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EU경제의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EU의 확대가 더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EU장래를 놓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기 위한 각국간의 이해충돌을 EU집행부가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하느냐도 관심거리다.
EU 본부의 튜닝가 자유무역협정과 부과장은 “지금까지는 아주 잘해왔다. 그러나 양ㆍ질적인 팽창을 앞두고 EU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숙제”라고 말해 EU의 고민을 내비쳤다.
/브뤼셀(벨기에)=김홍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