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도그마에서 벗어나라] <중> 공약가계부

지출에 세수 맞춰 '재정 분식' … 재원조달 계획 통째로 다시 짜야<br>올 17조원대 추경 편성도 MB정부 부풀리기가 화근<br>비현실적 숫자놀음 계속땐 재정건전성 악화 부를수도


정부와 새누리당이 세법개정안 수정안을 발표한 지난 13일, 기획재정부는 수정안에 따른 4,400억원의 세수손실을 고소득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과세 강화 등으로 메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증세 기준을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리면서 발생한 펑크를 너무도 쉽게 땜질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불과 하루 뒤인 14일 기재부는 '수정안에 따른 공약가계부 달성 가능 여부'라는 제목의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4,400억원의 세수손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재차 주장했다.


하지만 근거는 달랐다. 당초 원안으로 마련한 비과세ㆍ감면 정비에 따른 세수효과가 5년간 12조원이었고 이는 당초 세제개편으로 마련하고자 했던 11조원보다 1조원이 초과된 수준인 만큼 수정안으로 세수손실이 발생해도 공약 이행 재원에는 차질이 없다는 내용이다. 이런 모순된 주장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가 숫자 맞추기에 불과했음을 반증한다.

공약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재정을 숫자 퍼즐 게임으로 전락시킨 테크노크라트(관료)들의 이른바 '공약가계부 도그마'다.

사실 도그마의 징후는 곳곳에서 노출돼왔다. 기재부 1차관실 소속이던 세제실을 2차관실로 옮겨 예산과 세제를 2차관 산하로 일원화한 게 첫 징후다.

정상적인 가계라면 수입에 맞춰 지출계획을 짜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부는 다르다. 지출에 맞춰 수입을 과다추계하려는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예산과 세제는 상호 견제와 균형이 맞아야 한다. 과거 기획예산처처럼 예산을 관장하는 부처를 따로 둬 세제를 담당하는 재정부와 견제를 유지하려 했던 것은 이런 원리에서다. 세제가 예산에 끌려다니면 과다지출의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정권의 요구에 맞춰 세수를 과다추계하게 되고 이는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예산 기능을 기재부로 넘겼고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 더해 세제실을 2차관 아래로 일원화했다.


예산과 세제를 담당하는 부처가 분리됐던 과거에도 지출에 수입을 맞추는 관행이 만연했는데 두 분야가 일원화되면 이런 식의 '재정 분식'은 한층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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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4월 17조원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도 이명박 정부의 분식이 원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균형재정을 맞춘다는 명목하에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잡고 매각 가능성이 없는 산은금융지주와 기업은행 지분 매각대금을 세입에 끼워 넣어 결과적으로 12조원의 세수부족을 야기했다. 17조원의 추가경정예산 가운데 무려 12조원이 재정 분식에 따른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지출에 세수를 끼워 맞추는 재정 분식의 결정판이었다.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돈이 대선 캠프 시절 135조원으로 정해졌고 기재부는 여기에 세수를 끼워 맞추기 위해 세출절감 84조1,000억원에 비과세ㆍ감면 정비 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 27조2,000억원, 금융소득과세 강화 2조9,000억원 등 세입확충으로 돈을 마련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재원조달 계획이 나온 것이다. 불확실한 세입을 토대로 한 공약 이행은 결국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약가계부 도그마는 박근혜 정부의 '지역공약 이행계획', 이른바 '지역공약 가계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재부는 106개 지역공약에 총 124조원의 재정이 소요된다면서도 정작 재원대책은 내놓지 못했다. 그러면서 제시한 카드가 '민자사업'이다. 기재부는 지역공약 가계부를 발표하면서 예정에 없던 민자사업 활성화 방안을 끼워 넣었고 이 방안에서 도로는 물론 보육ㆍ요양시설, 수목원ㆍ휴양림 등 재정으로 해야 할 사업까지 민자사업으로 돌리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민자사업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빚을 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꼼수'에 불과하다. 당장은 민간의 돈을 끌어들여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나중에 손해가 생기면 정부가 원가보상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민자사업은 부담이 짧게는 다음 정부, 길게는 다음 세대에 전가된다. 정부가 빚을 지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국채발행과 다른 점은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는 것뿐이다. 또 다른 분식이다.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은 "민자사업은 종국에 빚을 진다는 의미에서 국채발행 등 채무부담과 다를 바 없다"며 "재정이 부족하니 민자사업으로 메우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현 가능한 재원조달 계획을 다시 짜고 이에 맞춰 공약을 일부 수정하거나 국민적 합의를 통해 증세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출을 정한 뒤 세입을 맞추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세입을 도출한 뒤 세출을 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복지공약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을 모두 이행하기 위해서는 증세 없이는 어렵다"며 "국민들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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