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홍보가 문제라고요?


"홍보가 문제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문제의 정확한 원인은 보지 않고 홍보가 잘되지 않아 이 지경까지 몰렸다는 불평이다. 단지 닉슨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 홍보와 상황논리를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로 인해 상황은 점점 더 꼬여만 갈 뿐이다. 급기야 마지막에는 여론의 비난과 법적 처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위기관리의 문제다.


변호사가 웬 위기관리냐고. 그렇다. 변호사의 주요 역할은 소송대리·형사변론·자문 등이다. 그러나 시대 변화는 변호사의 역할과 범위 확장을 요구한다. "변호사가 소송 잘하면 됐지"라거나 "변호사는 계약서만 꼼꼼하게 봐주면 된다"는 생각은 20세기적 사고다. 마치 기업인이 "나는 돈만 잘 벌면 된다"는 사고와 유사하다. 이제 변호사는 의뢰인이 들고 온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의뢰인의 기대치와 요구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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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대응의 핵심은 발생한 위기를 더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목표설정이다. 위기 악화는 많은 경우 위기 발생 후 벌어지는 대응과 관리방식 실패에 더 큰 원인이 있다. 따라서 변호사는 위기관리자의 시각으로 법적·여론·정치적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물론 의뢰인의 입장에서 법의 틀 밖의 사고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위기 이후 회복의 관건은 신뢰에 달렸다. 앞서 언급한 닉슨 대통령의 사임까지 가져온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핵심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은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에너지 회사라면 사업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친환경에너지 벤처회사의 인수를 시도할 때 법적 리스크와 별개로 발생할 사회·정치적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간과하면 회사의 평판은 물론 비즈니스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의류회사가 자사 제품에 악소문을 유포한 십대의 처벌을 원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회사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악소문을 잠재워서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는 것이라면 처벌이 가능하다 해도 이것은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고려돼야 하며 처벌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이 경우 변호사는 법률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의뢰인에게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 자문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외부 조언자일 수 있다. 단순한 법률적 자문으로 변호사 역할을 한정하기보다 다각도의 분석과 다면적 시나리오를 통해 의뢰인에게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설명해 의뢰인이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안제시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이겨도 소송과정의 문제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이미지가 나빠진다면 이는 의뢰인이 원한 최상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법적 논리가 아무리 우월해도 여론에 부정적으로 비친다면 의도한 소송 결과를 얻어내는 것도 힘에 부치게 될 수 있다.

사회 복잡성과 정보의 급속한 확대는 생활의 편리와는 별도로 불확실성을 키우는 역설을 만들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기관은 오늘날 위기의 일상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 자체가 어떤 위기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 점점 더 알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라는 직업도 원래 본연의 업무로부터 확장을 꾀해 사회 변화에 맞춰가는 역할로 변화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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