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잊혀져 가는 경제 애국자

"가끔은 제가 마치 이 곳에 인질로 잡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아프리카 출장 길에서 만난 국내 한 기업의 현지 주재원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했다. 아프리카에 한 번 진출한 이상 당장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안한 치안 등 위험요인을 감수하며 현지를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외국 기업이 철수하는 순간 더 이상 자기들과 비즈니스를 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때문에 가끔은 회사의 미래를 위한 '인질'로 남아 있다는 책임감 없이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말한다. 농담 섞인 말투로 웃으며 던진 말이었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비장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검은 대륙'아프리카에서 만난 우리 기업인들의 각오는 대부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의 주재원들은 "목숨 걸고 일한다"고 말할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머나먼 땅에서 시장개척과 자원확보를 위해 부지런히 발로 뛰고 있다. 이들은 해외 경쟁국가와 경쟁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납치와 풍토병 같은 온갖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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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데는 '시장개척'이라는 일념하에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 경제 역군들이 큰 힘이 됐다. 더욱이 자원도 빈약하고 내수시장도 협소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해외시장 개척은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지난 6월 페루에서 삼성물산 직원 3명을 포함해 우리 기업인들을 태운 헬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지도 어느덧 100일이 넘게 지났다. 이들은 총 사업비 1조8,000억원에 달하는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위해 부지를 답사하고 돌아오던 길에 참변을 당했다.

당시 그들이 근무한 회사의 사내 게시판과 트위터,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건설 한류를 중남미까지 흐르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이 우리의 영웅이다. 진정한 애국자를 잊지 말자"는 눈물 섞인 추모의 글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100여일이 지난 지금 그들의 죽음은 어느덧 쉽사리 잊혀지는 듯하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공세에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해외시장개척 노력은 가려지고 있다. 또 해외 주재원들의 안전관리 매뉴얼이나 처우개선은 어떻게 개선됐는지 들리는 소식이 없다. 오늘도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하는 경제 역군들의 노고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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