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 천하무적(天下無賊)

중국 대도시에서 수년간 공장생활을 한 농촌 총각 샤건은 그동안 벌어 모은 전재산 6만위안(약 7,200만원)을 들고 귀향 열차에 올랐다. 그는 “이 세상에 도둑이란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나이다. 그는 그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집 한 채를 마련하고 예쁜 색시를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가 탄 열차에는 중국의 최고수 도둑이 동승해 그의 돈을 노리고 있었다. ‘천하무적(天下無賊)’이라는 제목의 중국영화에서는 순진한 농촌 총각 샤건의 돈을 훔치려는 악당 도둑과 이를 막으려는 의적(義賊) 부부의 일대 활극이 펼쳐진다. 그런데 요즘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하고 있는 중국의 증권시장이 영화 ‘천하무적’에 비견되고 있다. 중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재경’은 최근 “최근 내부자거래가 기승을 부리면서 상하이 증시에서 ‘천하무적’과 같은 활극이 상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16일 전모가 드러난 상터우(上投)모건의 펀드매니저인 탕젠(唐建) 사건이다. 탕젠은 펀드를 조성하기 전에 자신의 부친 명의의 차명계좌 등으로 주식을 사들여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발각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에 투자자들은 “도둑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꼴”이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상터우모건 측은 탕젠을 즉각 해고하고 비리사건의 전말을 비교적 신속하게 공개해 이 사태는 일단 수습국면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탕젠 사건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상하이 증권가에서는 “증권사 펀드매니저가 지난 한 해 1,000만위안(약 12억원) 이상을 벌지 못했다면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펀드매니저들뿐 아니라 많은 기업인과 정부 관료들도 거리낌없이 내부자거래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중국증시 관련자들 상당수가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자를 통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일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자거래가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영화 ‘천하무적’얘기를 하자면 농촌총각 샤건은 다행히 의로운 부부 도둑의 도움으로 자신의 전재산을 지켜내고 무사귀향에 성공한다. 그렇다면 중국증시는 어떻게 될까. 쌈짓돈을 들고 객장을 찾은 주부나, 학자금을 투자자금으로 돌려 쓴 대학생이나, 샤건처럼 평생 모은 재산을 주식계좌에 넣은 농민들이나 하나같이 상하이 증시에는 도둑이 없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급등과 급락이 교차하는 도박 장 속에서 증시 도둑들의 눈에 이들의 돈은 그저 손쉬운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개미투자자들의 ‘천하무적’이라는 믿음이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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