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가 원가공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를 올해 상반기 인터넷에서 유행한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 패러디 시리즈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로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내는 조삼모사 패러디 시리즈를 닮았다. 대선후보 단일화, 불법 대선자금 논란 등 고비 때마다 역발상으로 여러 차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 기질’까지 엿보인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4년 6월9일 민주노동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다. 장사는 열 배 남는 장사도 있고 열 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며 원가공개를 반대했다. 이에 대해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통령과 계급장을 떼고 논쟁해보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노 대통령은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판교, 파주 운정 신도시와 은평 뉴타운 등의 고분양가 논란이 잇따르고 주변 집값까지 들썩이면서 시민단체의 분양원가 공개요구가 거세지자 노 대통령이 입장을 바꿨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국민들이 다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바라니까 그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겠느냐. 그건 저도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며 분양원가 공개 항목과 적용 대상 확대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분양에 따른 민간기업 적자 보전 ▦임대주택 등 공공사업의 차질 ▦민간주택 공급 감소 등 원가공개 부작용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원가공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바람’ 외에 이렇다 할 설명이 없었다. 이는 마치 원가를 공개하면 세금도 많이 내고 집값도 오를텐데 국민이 이를 감수하고라도 원가공개를 바라니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소신을 바꿨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정책결정은 정치인 개인의 결단과 다르다. 정책은 국민생활과 직결돼 시장에 주는 파장이 큰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공공 부문에서 분양가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사실 고분양가의 가장 큰 원은 공공 부문의 비싼 택지공급이다.
지방세 등 막대한 개발혜택을 누리는 지자체가 사업승인권을 무기로 간선시설비용 등의 일부를 사업 시행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택지조성 원가상승 요인이 돼 고스란히 고분양가로 돌아온다. 노 대통령은 논란과 후유증이 많은 원가공개에 앞서 이런 관행을 막을 수 있는 법적ㆍ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