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심층진단] "살 곳까지 죽일수도"… 부활한 SK하이닉스 교훈 삼아야

■ 조기 정리로 바뀐 구조조정… 타당한가<br>대규모 자금 지원서 옥석가리기로 선회<br>홍기택·강석훈 학자시각에 '원칙'만 강조<br>업황 악화로 위기 빠진 기업엔 재기 기회를



"이번 정부에서는 부실 대기업을 정리하고 간다는 방침입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금융당국의 대기업 구조조정 틀이 바뀌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살리던 과거와 달리 죽일 기업은 과감하게 죽이겠다는 것이다. 옥석을 가리겠다는 얘기다.


동양그룹 사태 이후 최근의 대기업 구조조정 흐름을 보면 주채권은행이자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을 통해 금융당국이 지원을 압박하던 분위기가 예전보다 크게 옅어졌다. 대기업이 쓰러지면 중소기업과 종업원ㆍ업종 전체가 흔들린다는 이른바 대마불사의 신화는 찾을 수 없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과 여권의 강석훈 의원 등 학자 출신 인사들이다. 원칙론으로 과감하게 칼을 댈 것은 대겠다는 게 이들의 의지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론으로는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맞지만 기업의 특성을 모르고 원칙에만 매몰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기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업황이 어려워져 위기를 겪는 기업에는 부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선ㆍ해운ㆍ건설ㆍ철강 등 수년간 부진을 겪던 취약업종이 언젠가는 활황 흐름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매각과 청산의 위기까지 몰렸던 하이닉스반도체가 SK하이닉스로 주인을 바꾼 후 시황 개선과 함께 한 분기에만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면서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을 반추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국 압박으로 구조조정하는 시대 지났다"=금융위원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주채무계열 개선 방안은 정부보다 은행과 자본시장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6일 "과거처럼 당국이 일방적으로 채권은행을 압박해 기업을 살리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그나마 기업들이 은행 여신을 갚고 시장성 차입금으로 돈을 마련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을 둘러싼 자금환경도 바뀌었다. 과거 대기업 총수 일가에서 계열사를 지원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계열사 위험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동양그룹의 위기 때 정부 당국은 동생회사인 오리온의 지원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또한 은행에서 돈을 빌리던 대기업이 회사채나 기업어음(CP)에 손을 벌리면서 정부가 개입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개입에 의한 구조조정 실패로 끝나=정부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세계적인 추세와 환경변화 외에도 그동안 정부의 실패 사례가 원인이다. 과거 정부는 산은을 통해 대기업의 여신을 관리하고 부실이 났을 때 대규모로 지원했다. 그 과정이 당국과 은행, 기업 오너 등 소수의 고위관계자 간 비공개 회의를 통해 진행되면서 불투명한 관치라는 지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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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재무사정이 악화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석훈 의원실 자료를 보면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산은이 주채권은행인 8개 주채무계열의 채무액이나 부채비율이 증가했다. ▦동부 ▦한진중공업 ▦동국제강 ▦대우조선해양 ▦금호아시아나 ▦대우건설은 채무가 5조4,209억원 늘었다. 한진그룹을 비롯해 동부ㆍ동국제강ㆍSTXㆍ대우건설 등 5곳은 부채비율이 올라갔다.

이 때문에 산은은 올해 최대 1조원의 적자를 예상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 홍 회장은 앞으로 기업 지원시 선별적으로 할 뜻을 강조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적어도 산은이 구조조정의 내용이나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라며 "금융기관도 리스크 관리를 통한 미래 예측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계에서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막연한 지원 기대감이나 부정확한 신용등급을 낳는 원인이 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학자적 판단' 비판도…"살 수 있는 기업 죽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구조조정" 시각=그러나 SK하이닉스의 사례처럼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을 죽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올해 7월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기 전까지 하이닉스는 주인(SK)을 찾지 못한 채 떠돌았다. 과거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될 뻔했고 주인을 찾지 못해 아예 청산 얘기까지 나왔다.

가까스로 연명한 후에도 채권단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야 했다. 하이닉스 때문에 외환은행은 엄청난 손실을 봐야 했다.

하지만 채권단의 끈질긴 지원과 당국의 기업 살리기 의지는 결국 옥동자를 낳았다. 선제적인 구조조정의 대상에 오르지 않고 꾸준한 자구노력을 통해 11년 만에 알짜 기업으로 부활한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지나치게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 기준으로 접근하고 학자적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기업 구조조정은 매각과 청산 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면서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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