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건설규제, 이것만을 풀고 가자] <중> 덤핑수주 부르는 최저가낙찰제

"100억 공사에 42억 적자"… '대못'이 경영악화·부실시공 주범

일감 없어 '울며 겨자먹기' 수주로 적자 만연

'실적공사비제'도 비용 삭감 수단으로 악용

근로자·하도급·자재업체들 생존마저 위협

최저가낙찰제는 단기적으로 공사비를 절감하지만 무리한 덤핑 수주와 품질저하로 오히려 경제·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사가 한창인 한 건설현장 전경. /서울경제DB



"가격경쟁에 치중하는 최저가낙찰제는 그 속성상 덤핑 입찰과 저가 수주로 이어져 건설업체 경영악화와 부실시공의 원인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경기침체로 건설업체들이 저가 낙찰도 불사하면서 하도급업체는 물론 자재업체·기계장비·건설근로자 등 건설업계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다."(중견건설사의 한 관계자)

올해로 도입 14년째를 맞은 최저가낙찰제의 구조적 문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업계를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저가낙찰제는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와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지난 2001년 도입됐지만 무조건 '싼값'을 제시하는 업체가 일감을 따내는 방식이어서 폐해가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계의 먹거리가 급감한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적자 수주를 하는 경우가 많아 최저가낙찰제의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저가낙찰제 실행률 최고 141.9% …적자시공 만연=17일 대한건설협회와 한국건설관리학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61개 업체의 공공공사(총 614건)에 대한 실행률(계약금액 대비 실행금액의 비율)을 분석한 결과 최저가낙찰제로 진행된 공사(513건)의 실행률은 평균 104.8%, 최대 141.9%로 나타났다. 이는 공사비로 100억원을 받았지만 실제 공사비는 최대 142억원까지 들어 건설사들이 그만큼 손해를 봤다는 의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발주처가 제시하는 예정가격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최근 낙찰률은 설계가 대비 75%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공사를 따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건설사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저가낙찰제 공사 실행률이 다른 입찰방식의 공사 실행률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입찰방식별 공사 실행률은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58건) 93.0%, 적격심사(29건) 87.4%, 대안입찰 방식(7건) 96.2%, 수의계약(7건) 82.7% 등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2006년을 기점으로 급등한 최저가낙찰제 공사 실행률이 좀처럼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도 건설업체들이 적자시공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2006년 98.3%로 겨우 적자를 면할 수준이었던 평균 실행률은 2007년 105.2%로 치솟았고 이후 2008년 108.4%, 2009년 102.8%, 2010년 103.9%, 2011년 104.3%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2008년에 발주됐던 최저가입찰 공사 127건의 실행률 평균이 108.4%라는 것은 기업의 수익성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나타낸다"며 "이후 상황도 달라지지 않아 한때 '캐시카우'로 불렸던 공공공사의 매력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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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가격 중심으로 공사업체를 선정하는 최저가낙찰제가 원도급업체뿐만 아니라 하도급업체·자재업체·건설근로자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가로 공사를 따낸 원도급사들이 이익을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실행공사비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하도급을 주고 그 피해가 건설근로자에게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사의 품질이나 안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현실성 떨어지는 실적공사비제 폐해도 커=정부가 2004년 건설업체 간 기술경쟁 촉진 및 시장가격 반영 등을 위해 도입한 실적공사비 제도 역시 당초 도입취지와 달리 공사비 삭감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실적공사비 제도는 발주자와 원도급자 간 체결한 '계약단가'를 활용해 건설공사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100억원으로 설계된 A공정을 건설사가 75억원에 낙찰 받았다면 다음 발주 시 A공정의 예정가격이 75억원으로 설정되는 방식이다. 이후 B건설사가 A공정을 낙찰 받기 위해 예정가격보다 낮은 금액을 써내 낙찰자로 선정되면 예정가격은 또다시 하향조정된다.

최근 정부가 내년 3월부터 실적공사비 제도를 손질해 실제 시장가격을 반영한 '표준시장단가'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 역시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시장거래가격을 추출하는 것이 어려운데다 어느 기관에서 업무를 담당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미흡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입찰단가와 시공계약단가 등이 모두 다를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단가기준을 축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부족한 실정이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여개에 달하는 공종에 대한 광범위한 시장단가를 수집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하도급 단가가 기준가격이 될 위험도 있다"며 "예정가격 산정은 공사 품질 및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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