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기업의 進化

박시룡 <논설실장>

경제난이 상투적인 수식어로 착각될 정도로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기업들로부터 희망적인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것은 큰 위안이다. 가령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들이 사상 최대 순익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그중의 하나다. 지난해 10조원이 넘는 순익을 기록한 삼성전자를 포함해 조 단위의 순익을 올린 기업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장기간의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이처럼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국제화가 그만큼 진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대기업들의 경우 국내 시장이 아니라 세계 시장이 기업활동의 주된 무대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전자 쇼나 자동차 쇼 등에서 한국 기업들이 잇달아 신제품을 내놓아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도 이제 모방단계에서 벗어나 자체 기술의 축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성전자가 세계 전자업계의 신화적인 존재 소니를 꺾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 기업의 위상은 엄청나게 높아졌다. 일본 가전업체들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잇달아 특허시비를 걸고 있는 것도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글로벌스탠더드 빠르게 체화 이는 과거 개발연대의 덩치 키우기 경영에서 벗어나 수익 위주 경영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기술력도 크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글로벌스탠더드를 훌륭하게 충족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과거 한국 기업의 최대 약점 가운데 하나였던 부채비율만 해도 거의 선진국 기업 수준으로 낮아졌고 주주중시 차원에서 배당과 주가관리를 위해서 해마다 많은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고도 수십조원의 사내유보를 쌓아두고 있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튼튼해졌다. 이정도면 수익성, 투명성, 주주중시 등의 면에서 선진국 기업들과 비교해 별로 뒤질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기업들의 높은 적응 능력을 입증하는 실증적 자료이기도 하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에서 삼성전자의 성공사례가 강의될 정도로 한국적 경영은 선진국 학계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외환위기와 함께 형편없이 폄훼됐던 한국 기업들이 불과 몇 년 만에 좋은 의미에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는 기업인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단기수익 위주의 경영에 안주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공격적 경영의 발목을 잡는 제도와 풍토에 불안을 느끼고 불만을 털어놓는 기업인들이 많은 것이다.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그만둔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은 “글로벌스탠더드는 강자, 세계 시장을 장악한 기득권자의 논리로서 그러한 경영방법과 논리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더드를 뛰어넘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아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돈 안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비싼 노동력 대신에 로봇을 이용해 비용을 절감하는 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단기수익에 급급한 경영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차별화는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일 수도 있고 여러 계열사들이 힘을 합쳐 리스크가 큰 미래유망 분야에 진출하는 경영방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순익 10조원의 신화를 창조한 반도체사업은 삼성전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이 만든 회사라는 사실에 해답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외국에는 없는 출자규제와 지급보증 금지 등은 경쟁력의 원천인 차별화를 없애는 반경쟁력 제도라는 생각도 든다. 외국의 눈치를 보는 글로벌스탠더드를 넘어 한국적인 것에 바탕을 둔 차별화에 자심감을 가져도 좋을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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