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범유럽 증시 출범과 함께 이같은 가상 시나리오는 곧바로 현실로 닥치게 될 전망이다.98년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전격적인 합의로 촉발된 유럽 8개 증시 통합작업은 올 11월 출범을 위해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때 프랑스가 「앵글로-게르만」의 야합이라며 반발하고 나서 유럽 자본시장이 양분될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지난해 9월 거래시스템과 결제방식 통일을 위해 8개 증시연맹이 구성됐고 출범시기도 2000년11월말로 최종 합의됐다.
런던증권거래소 제르미 휴즈홍보실장은 『미 나스닥의 유럽진출, 뉴욕증시의 거래시간 연장 등 외부 압력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유럽증시 통합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게임이 될 것』이라며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현재 통합증시에 참여키로 한 곳은 런던(영국), 프랑크푸르트(독일), 파리(프랑스)를 비롯해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브뤼셀(벨기에), 마드리드(스페인), 밀라노(이탈리아), 취리히(스위스) 등 유럽의 8개 증권거래소다.
북유럽 3국중 유일하게 통합증시에 관심을 가졌던 스톡홀름 증시(스웨덴)는 기존 거래소와 통합증시간의 이해상충을 우려해 막판에 참여를 포기했다. 이들 북유럽 3국은 유로권과 별도의 노르딕 증시연합을 추진하고 있다.
HSBC의 피터 마쉬 유럽영업담당 상무이사는 『단일증시가 탄생하면 각국 주식거래시스템 차이 때문에 부담해 온 금융비용이 사라져 역내 증권사들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주식거래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 실제 유럽의 우량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쉬운 미 뉴욕증시나 나스닥시장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등 유럽증시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인 열세를 보여왔다.
통합증시는 기존 8개 증권거래소를 전산으로 연결해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8개 거래소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 위해 각국은 서로 다른 거래규정을 하나로 통일하고 거래시간도 단일화해야 한다.
파리증권거래소는 거래관행 통합화 계획에 따라 지난해 9월20일부터 거래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전 9시로 1시간 앞당기는 등 통합에 대비하고 있다. 또 올봄부터 증시 페장시간을 현행 오후 5시05분에서 오후 5시30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8개 증권거래소는 통합후 거래비중이 높은 상위 300~600개 우량기업을 우선 거래키로 하고 대상기업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단일증시 출범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영국과 독일은 경비분담 및 신설법인의 지분문제를 놓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고 독일과 프랑스는 결제시스템 채택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편 유럽의 벤처기업을 위한 신설증권거래소들은 이미 통합 운영되고 있다.
90년대 후반 신흥 고성장 기업을 위해 별도의 거래소들이 잇따라 설립됐고, 이들은 유동성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로NM이라는 전자거래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통합됐다.
유로NM에는 지난 96년 설립된 누보 마르쉐(파리)를 선두로 노이어마크트(프랑크푸르트), NMAX(암스테르담), 유로NM벨기에(브뤼셀)와 지난해초 설립된 누보 메르카토(밀라노) 등 5개 거래소가 참여하고 있다.
유로NM은 각국의 첨단주중심 시장을 전자결제방식으로 연결해 5개 증권거래소의 어느 단말기를 통해서도 거래가 가능하다. 다만 거래기업은 각국 시장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우량기업만 우선 허용하고 있다.
유로NM의 거래기업수는 98년6월 100개를 넘어선 후 99년 4월에는 200개를 돌파했고 99년10월에는 300개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프랑수아 테오도르 파리증권거래소 이사장 겸 누보 마르쉐 회장은 『기업들의 신규상장(IPO) 붐이 지속될 경우 오는 2000년말 상장기업 수는 500개에 달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투자자들의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유로NM의 지수 상승률도 97년 85.3%, 98년 134%에 달해 기존 거래소시장을 크게 앞서고 있다.
유로NM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 중 26개는 나스닥에 동시 상장돼 있어 유럽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명성을 쌓고 있다.
더욱이 유로NM에는 조만간 5개의 새로운 벤처중심 신흥증권거래소가 추가로 참여할 예정이다. 후보군으로는 99년7월20일 벤처 전문 증권거래소가 신설된 취리히와 스톡홀름, 코펜하겐, 오슬로, 그리고 헬싱키 등이다.
20세기 두번의 세계대전을 치렀고 봉건시대 잔재인 분권주의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유럽대륙이 단일 경제권을 향해 소리없는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섬나라 영국이 해저터널을 통해 대륙과 연결됐고 지난해에는 경제의 핏줄인 통화마저 통합됐다. 올 연말 증시마저 통합되면 유럽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유럽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이형주기자LHJ30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