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은 다목적 카드=북한은 올들어 남북 관계에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면 전환을 시도해 왔다. 실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북남 사이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며 남북관개 개선을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이후에도 노동신문이나 북한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우리 정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북한의 확실한 태도변화를 꾸준히 요구했다.
북한은 24일 오전에도 우리측에 국방위 명의의 공개 서한을 통해 “우리의 중대제안은 결코 위장 평화공세도, 동족을 대상으로 벌이는 선전심리전도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우리측이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며 재차 압박하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관계의 원칙을 중요시하는 박근혜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인도적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던 점을 활용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제의를 통해 미국과 중국측에 ‘자신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선제적 비핵화 조치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말려들지 않고 있다. 새뮤얼 로클리어 미국 태평양군사령관 또한 23일(현지시간) “북한은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국가이며 김정은이 항상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 여부에 의구심이 든다”며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것 또한 북한의 조바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장성택 처형 이후 어느때보다 악화된 것으로 평가받는 대중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 제의라는 국면전환용 카드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장성택 처형이 북한내 이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의 결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한이 경제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유엔안보리 결의 2094호 등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며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대북 제재 완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외 관계 개선은 물론 경제 개발까지 노린 다목적 카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행사 직전까지는 물음표=남북 양측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를 위한 사전 작업을 마무리 한다 해도 예정대로 열리지 여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북한은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를 나흘 앞두고 “남측이 남북대화를 동족대결에 악용하고 있다”며 갑작스레 행사를 취소하는 등 종종 우리의 기대를 져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연습’을 목전에 두고 있어 북한이 이를 핑계로 행사를 돌연 연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지난해 한미연합훈련 기간에도 ‘정전협정 파기’ 등으로 우리 측을 위협하며 남북간 긴장 수위를 최고치로 끌어올린 바 있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산가족 상봉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대화 틀을 만들어갈 수 있길 희망한다”며 상봉행사를 제안했을 당시에도, 한미군사훈련을 이유로 이를 거절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의해 왔고 우리측에 회담 날짜를 일임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리 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장용석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외자 유치 등을 위해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북한이 자신들의 제안을 쉽게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등을 핑계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소극적일 가능성은 있지만 회담 날짜 선정의 키를 우리측에 넘기는 등 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무산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