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다시 생각하는 느림의 미학

‘슬로 시티(Slow City)’운동이 지난해 말 국내에 상륙했다. 이 운동은 지난 1999년 이탈리아의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생겨났다. 당시 시장인 파울로 사투르니니가 “빨리 빨리 살 것을 강요하는 현대생활은 인간을 망가뜨리는 바이러스”라고 주장하며 마을 사람들과 세계를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하면서 시작됐다. 느긋하게 사는 법을 실천할 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곧 유럽으로 퍼져나아갔고 지난 2007년 12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전남 담양 등 4곳이 슬로 시티로 지정됐다. 지금까지 국제연맹에서 슬로 시티 인증을 받은 곳은 총 97개 도시(11개국)에 달하며 바쁜 일상에 지친 전세계 도시민의 공감 속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슬로 시티 운동의 요지는 “천천히, 느리게 사는 게 행복한 생활”이라는 것. 여기서 느림이란 게으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목적을 향해 우직하고 느긋하게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 말은 투자 세계에도 딱 들어맞을 듯 싶다. 특히 주가급락으로 조바심을 내는 주식투자자들이 많아진 최근과 같은 장세에서는 느림의 가치가 더욱 생각난다. 셀 수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빠르게 교차하는 투자의 세계에서 느긋함을 주문하는 건 생뚱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투자자들이 경험했듯이 목표가 있는 느긋함(장기투자)은 한번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월가의 전설인 피터 린치는 13년간 2,700%, 연평균 2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지만 그가 운용했던 마젤란펀드에 투자한 고객은 절반 이상이 손해를 봤다고 한다. 펀드 수익률이 좋은 것을 보고 가입했다 이후 수익률이 예상보다 부진하자 1ㆍ4~2ㆍ4분기 만에 환매하는 것을 반복한 때문이다. “빨리 빨리 수익을 내자”는 조바심이 끈기있게 기다리면 찾아오는 수익을 스스로 차버린 ‘바이러스’였던 셈이다. 투자를 100m, 200m 와 같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에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이 불안하다고 샛길로 빠지거나 중간에 포기하면 완주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앞으로도 증시 등락은 거듭되고 대다수 투자자들은 하루 하루의 수익률에 일희일비할 것이다. 그러면 ‘슬로, 느림’의 참 맛을 볼 수 없다. 이제라도 독하게 마음 먹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보겠노라고 다짐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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