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까지의 완연한 회복세가 '세금폭탄' 걱정으로 한방에 꺼져버렸습니다. 거래가 늘어나고 시세도 꾸준히 오르는 상황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이 중단됐습니다."(반포동 M공인 대표)
세금폭탄 우려에 거래절벽 조짐이 현실화하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취득세율 영구인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 정부가 거래활성화를 위해 온갖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월세 소득공제 확대에 따른 '세원 노출'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닥치자 주택시장으로 되돌아오던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멈춰선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임대소득 과세'가 언젠가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택시장이 겨우 회복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돌발변수가 시장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청담역지점장은 "월세 임대소득 세금을 정확히 얼마 더 내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투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심리가 위축됐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며 이번 발표는 정부가 정책 타이밍을 잘못 잡은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심리 다시 꽁꽁…강남 재건축 거래 스톱=가장 눈에 띄게 거래가 줄어든 곳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들이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소형 의무비율 완화 등 규제 완화책이 도화선이 되면서 투자자들의 문의가 급증, 거래가 늘어나고 주택 가격이 상승했지만 이 같은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의 경우 연초 이후 급상승했던 시세가 약보합세로 돌아섰다. 이 아파트 76㎡(이하 전용면적)는 지난해 말 10억6,000만~10억7,000만원에 실거래됐지만 올해 11억5,000만원에 매매될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정부의 임대소득세 과세 강화 방침 이후 3월 첫째주부터 반응이 차갑게 식어버리면서 가격이 동결되고 거래도 위축됐다. 1~2월까지 많게는 하루에 3건씩 계약이 이뤄질 정도였지만 3월 들어서는 3건의 거래가 성사된 게 전부다. 박준 잠실박사공인 대표는 "주공5단지 사업전망이 밝아 거래 문의가 꾸준했지만 최근에는 세금 관련 문의가 주를 이룬다"며 "투자자들이 구입에 따른 기회비용을 따져보느라 당장 거래를 하려는 이들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강남의 대표적 저층 재건축 추진단지인 개포지구(시영·주공1~4단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1~2월만 해도 첫주에 10건 정도 거래가 성사됐지만 이달 들어서는 3건밖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사업진행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고 소형 비율이 높아 강남 재건축 중에서는 비교적 소액투자처로 인기를 끌었지만 향후 보유주택 수 증가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면서 문의가 급감했다. 채은희 개포공인 대표는 "시세가 너무 높게 형성돼 있다고 느끼던 투자자들이 정부 발표가 있자마자 매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전했다.
◇일반 아파트 거래도 '뚝'=거래절벽 조짐은 강남 재건축뿐만 아니라 일반 아파트 시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단 주택거래를 유보하고 향후 시장상황을 지켜보자는 관망세가 뚜렷해진 것. 특히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주택의 경우 종합부동산세 부담에 임대소득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매수 문의가 뚝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송파구 잠실동 등 고가주택 밀집지역에서는 일주일 만에 시장의 주도권이 매도자에서 매수자로 전환됐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9억원 초과 주택은 1주택 보유자라고 하더라도 월세소득에 과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고가주택=세금폭탄'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반포동 D공인 관계자는 "고가주택 보유자의 경우 종부세·임대소득세는 물론 세원 노출로 국민연금·의료비 등도 늘어날 판인데 누가 집을 사겠느냐"며 "오히려 집주인들이 호가를 낮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 오름세가 뚜렷했던 판교신도시에서도 호가가 하향 조정되고 있다. 올 들어 시세가 5,500만원이나 오른 이 지역 백현1단지 푸르지오그랑블 104㎡는 최근 호가가 1,000만원 떨어졌다는 것이 주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여유계층의 탈주택현상 심화…민간임대 위축 우려=주택투자에서 눈을 돌린 투자자들이 대체투자처를 모색하면서 이 같은 거래절벽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주택에서 상가나 토지 등 다른 부동산 상품으로 갈아타려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급속히 늘고 있기 때문.
실제로 서울 주요 중개업소·은행PB센터·컨설팅업체에는 대체투자처를 모색하는 여유계층의 문의가 늘고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주택을 매입하려던 고객이 위례나 마곡 등 개발호재가 반영된 지역의 상가를 알아봐달라는 문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민간임대시장 위축이다. 정부가 전월세 대책의 일환으로 준공공임대주택, 민간임대 리츠 등을 도입했지만 당장 민간임대물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아닌데다 임대 시장에서 다주택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임대소득에 과세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이지만 시기가 잘못됐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내놓은 대책이 다주택자 과세로 옮겨가면서 전월세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