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이

박정래 <시인·제일기획 미디어전략연구소 소장>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상당히 철학적인 것 같은 이 퀴즈를 낸다면 대부분 당황하겠지만 난센스 퀴즈라는 힌트를 준다면 누구나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과'라는 글자가 있음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하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난센스 퀴즈처럼 '과'가 있다고 답할 수도 있고 달력을 보면 금방 눈치 채겠지만 6일과 7일이 있음을 알 수도 있다. 아마도 조금 더 진도가 나간다면 뭔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꽤 아이로니컬한 질문인 것 같아 생각에 접어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분명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사흘 상간으로 달력에 버젓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움이고 행복인 것 같다. 이런 날들이 만들어진 배경이야 어찌 됐던 한번 더 미래의 시간을 짊어지게 될 새싹, 어린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헤치고 우리를 낳고 키워주신 어버이의 은혜를 되돌아보게 되니 이 기념일은 매우 의미 있는 날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양가 노부모님(친가 쪽은 어머님만 남으셨지만)의 자식으로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대한 스스로의 비중과 행동에 대해 갸우뚱하고 고민을 해본다. 이제 중ㆍ고등학생이 된 딸ㆍ아들에 대한 부모의 입장으로서 사랑은 절대적인 것 같은데 양가 부모님에 대한 자식으로서 사랑은 상당히 의무적인 생각마저 드니 말이다. 자식을 위해서는 이번 중간고사 때 고생했다고 어디 뮤지컬이라도 예약해 같이 감상하고 근사한 점심이나 저녁 외식이라고 해야겠다고 아내와 벌써 며칠 전부터 알아보며 스케줄 짜고 하면서, 양가 부모님께는 이번 8일이 일요일이고 하니 어디 모시고 나가 점심이나 먹고 용돈이나 한 십만원씩 드릴까 하고 아주 일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낀세대라 지칭되는 40대 후반으로서 자식에게 효도를 받지 못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되는 첫 세대라고도 이야기하고, 평생 제사상을 모셔야 하고 제삿밥을 못 먹는 첫 세대라는 농담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한다면 본능적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하고 진함을 어찌할 수 없나 보다. 그러나 되짚어 생각해보면 우리도 부모님께는 그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던 자식인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효도 방학(?)을 준다고 벌써 저마다 모처럼 놀 궁리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어버이날 절대 시들지 않는 빨간 인조 카네이션이나 하나 달아주고 내가 준 용돈에서 적당한 선물하나 골라 사오지 않을까 생각하니 다소 섭섭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떤 기념일일수록 우리는 쉽게 형식적이고 사회적인 코드에 맞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들로 자기만족에 빠지지는 않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이에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세대를 이어 되풀이되는 내리사랑과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 아닌가 싶다. 만약 1년 365일이 부모에 대한 사랑과 자식들에 대한 적절한 사랑으로 점철된 것이라면 구태여 가족ㆍ세대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기념일로까지 표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은 어느 시대고 면면히 이어나갈 것이고 따라서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사랑도 끝없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색다른 이벤트를 하나 실행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중문학자 탄줘잉이 쓴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중에 네번째로 꼽았던 '부모님 발 닦아드리기'를 아이들과 함께 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어르신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겠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하고 인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부모님께 드리는 사랑의 크기만큼 더 큰 사랑을 배우고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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