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한국은행 총재 감이 어디 별나라에 있나

DJ부터 4대째 임기보장 관행 정착 20년만에 대통령·총재 임기 일치

첫 인사청문회는 정권교체 상관없이 연임의 새 전통 세울 계기 삼아야

통화정책까지 만기친람은 과욕 맘에 들기보단 무난한 인물이 제격


김중수 뒤를 이을 25대 한국은행 총재는 18대 박근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2018년 2월24일까지고 새 총재의 임기 만료일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3월31일이다. 대통령과 총재의 임기 일치는 1998년 21대 전철환 총재(2008.3~2002.3) 이후 20년 만이다.

임기를 같이 하는 데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한은 총재 잔혹사가 떠올라서다. 대통령이 총재 임명권자이지만 행정부와 한은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독립적이다. 단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정부와 길게 호흡하려는 한은의 엇박자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데 파장이 만만찮다. 양측의 충돌은 십중팔구 한은의 완패로 끝나고 말았다. 전 정권이 임명한 총재라면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성태 전 총재는 MB정부 내내 교체설에 시달렸다. 김중수 총재 역시 현 정권과 결코 매끄럽다곤 할 수 없다. 시장의 호사가들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통화정책 실기를 질책한 것을 떠올리면서 김 총재 교체 가능성을 퍼 날랐다.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새 정부는 그래도 두말않고 총재 임기를 존중해줬다. 한은 총재 자리가 갖는 무게감이 여느 대통령 임명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것은 바로 임기보장의 관행이 자리 잡은 덕분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관행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쌓이고 쌓여 전통이 되면 임명권을 쥔 권력조차 함부로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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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보장의 전통은 제법 오래됐다. DJ정부 때 전철환 총재를 필두로 박승·이성태 총재가 임기 4년을 꼬박 채웠다. 김중수 총재까지 벌써 16년 째다. 앞서 YS시절엔 3명의 총재 모두 중도 하차했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18대 조순, 19대 김명호, 20대 이경식 죄다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김 총재의 임기가 한 달 밖에 안 남았건만 후임 인선이 오리무중이다. 대통령 수첩에 원래 없는 탓일까. 사상 첫 국회 관문을 넘을 인물을 찾고자 신중을 기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엄격한 잣대로 인물난을 겪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늦다. 지나친 뜸들이기는 억측을 낳기 마련. 경제팀 교체와 맞물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저간의 사정이 뭐든 자질과 능력·도덕성에다 맘에 드는 인물까지 고르자면 밑도 끝도 없다.

한은 총재는 연임이 가능하지만 5년 대통령 단임제로 바뀐 1987년 체제 이후 단 한번도 연임의 사례가 없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 의장을 보자. 윌리엄 마틴은 19년9개월 재임 동안 5명의 대통령이 거쳐 갔다. 앨런 그린스펀 재임 19년5개월 동안 4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연준의 권위와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연준 의장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유이기도 하다. 연초 물러난 벤 버냉키도 공화당 대통령이 앉히고 민주당 대통령에 의해 연임했다.

우리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혹은 맘에 들지 않는다 해서 총재를 장관처럼 갈아치우는 악습을 버린 지 오래다. 다음 차례는 미국처럼 연임 전통을 만드는 일이다.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는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연임하는 전통을 만들 절호의 기회다. 미국처럼 국회 동의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경과보고서 채택은 그에 갈음한다. 그러자면 야당은 청문회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습성을 버려야 하고 대통령은 만기친람의 욕심을 접어야 한다. 한은 총재를 장관처럼 부릴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 함량 미달만 아니라면 마음에 드는 인물보다 무난한 인사가 제격이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총재들이 출중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죄다 무능했다는 평가도 없다. 총재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경제가 출렁이는 나라도 아니잖는가. 한은 총재감이 어디 별나라에 있는 것도 아니다. /권구찬 논설위원 chan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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