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후손들의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소송 이야기가 아니다. 그 흔한 토지 투기꾼 자녀들간의 유산 분배 싸움이야기도 아니다. 더 이상 방치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죽은 자들을 위한 묘지(墓地) 확산 문제이다.
어느새 우리나라 묘지 면적이 국토의 1%인 998㎢를 차지했고 해마다 서울 여의도 면적 크기의 산림이 묘지로 사라지고 있다. 현재 전국 2,000만여기의 묘지가 차지하고 있는 총 면적이 4,800만 우리 국민이 살고 있는 주택 면적의 절반에 이른다. 그리고 해마다 20만여기의 묘지가 신설되면서 600여㏊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더 정확히 표현해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 장사(葬事)제도가 계속된다면 비록 정부가 묘지 1기당 면적을 30㎡(약 10평)으로 제한한다 하더라도 전국토는 머잖아 묘지 만원 사태로 시달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 세계 각국의 기준에 비춰볼 때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해 있다고 봐야 옳다.
특히 묘지의 92% 정도가 산지와 삼림을 깎아내어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전국의 산림이 지금 기계총을 앓은 두발 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흉하게 드러나 있다.
이러다가는 산 자들이 둥지를 틀 땅이 죽은 자들의 안택(安宅)으로 바뀌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 생자(生者)와 사자(死者)간의 ‘땅 차지 싸움’이 본격화될지 모른다. 이미 세계에서 국토 면적당 인구밀도가 최고(1㎢당 485인) 수준인 우리나라로서는 이제 더 이상 현행 장사문화와 묘지제도에 대한 정부 당국의 개입을 꾸물댈 여유가 없다.
최근의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전체 묘지의 69%가 개인 묘지이고 그중 70%가 신고 없이 이뤄진 불법 묘지라고 한다. 아무리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존중한다 해서 무법 불법으로 산림이 전용 훼손되고 산사태와 산불의 원인이 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과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에게 심각한 생존의 문제이다.
하물며 세계화와 친환경적인 개발을 지향하는 선진 대한민국에서 묘지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며 아름다운 경관을 훼손하는 정도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모른 체 눈감아둘 수 없는 문제이다.
심지어 자기 가문의 부귀 영광과 미래의 기복을 과시하는 호화 분묘 행렬들이 만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직ㆍ간접적인 피해까지 초래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제 우리 국민 모두가 직시하고 깨달아야 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의 자랑스런 장사문화와 사자(死者)에 대한 경모사상을 살려나가면서 유한한 국토와 산림을 보존하는 새로운 장사제도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 모두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기된 대안이 공원 묘지화와 납골당제도였다.
그러나 모두가 다 잘 알다시피 이 또한 지나치게 상업화돼 서민과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돼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지와 자연생태계, 그리고 경관을 훼손함이 개인 묘지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근본적인 대안으로서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이러할 때 우리보다 국토 이용과 인구밀도 상태가 훨씬 양호한 선진 국가들에서 시작된 수목장(樹木葬ㆍ화장한 분골을 나무나 숲 또는 화원에 묻어 나무 또는 꽃과 함께 항구적으로 동시에 관리하는)제도가 근본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5년부터 스위스ㆍ독일ㆍ영국 등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평화의 숲 운동’인 수목장림(樹木葬林)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종교 철학자 카이저링은 “죽은 자의 영혼을 나무에 옮겨심는 일은 하늘과 직접 연계되는 신성한 부활 행사이다”고 갈파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임학계의 거목 고 김장수(고려대) 교수가 유언을 남겨 첫번째로 수목장을 한 바 있다.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는 오늘도 푸르고 곧게 자라고 있다.
죽은 다음에 나무나 꽃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국가가 이를 관장할 경우 산도 살리고 숲도 가꾸며 국토와 자연생태계도 보전하면서 조상과 후손을 함께 살리는 정말이지 탁월한 발상이며 가장 이상적인 장묘제도이다. 숲은 생자와 사자에게 공히 영원한 이상적인 휴양의 장소이며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유용한 생명을 꾸준히 공급하는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산사랑 국민운동’ 한국산지보전협회(02-6300-2001)가 9월8일 수목장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필자와 조연환 산림청장, 신중식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 20여명으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서명하게 한 바 있는 전국적인 ‘수목장 서약 운동’에 뜻 있는 우리 국민 모두가 적극 참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