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가을에 만나는 그림의 참맛

● 지석철 개인전<br>작품마다 빈 의자 등장 "우리시대의 인간 은유"<br>● 정보영 개인전<br>영화 장면이 된 미술관 빛·어둠의 절묘한 변주

정보영 '푸른시간(Blue hour)'

지석철 ‘부재의 추억’

혁신적이고 때로는 도발적인 현대미술이 종종 난해하다고 여겨지지만, 잘 그린 그림 한 점이 주는 감동은 여전히 진하고 특별하다. 가을에 잘 어울리며 '잘 그린 손맛''그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지석철과 정보영의 개인전들은 작품 속에 시선을 끄는 의자, 촛불 등의 매체를 배치했다는 남다른 공통점도 갖고 있다.


◇'빈 의자' 지석철=극사실주의 1세대 화가로 꼽히는 지석철(59) 홍익대 회화과 교수의 별명은 '의자 화가'다. 1982년 파리비엔날레에 초청돼 작은 나무 의자들로 구성된 설치작품을 출품한 후 30년 이상 그가 그린 그림에는 항상 작은 의자가 등장한다. 주워온 깨진 하트모양의 돌덩이 옆에도, 유학생이 선물한 앤틱 카메라 곁에도, 해적이 살았던 프랑스 해변에도, 기둥 위에도 나무 뿌리 옆에도, 자고 일어난 침대보 위에도 손가락 만한 꼬마의자가 나뒹군다. 이 의자를 두고 "인간 존재를 은유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부재(不在)가 역설하는 존재에 대한 기억부터 이별, 고독, 희망, 애착, 연민 등 나의 '의자'는 '의자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어도 좋을'존재"라고 설명했다. 스쳐가는 일상이 문득 신선하고 생경하게 다가올 때 작가는 이를 '비일상적 상상'의 장면으로 연출한 다음 화폭으로 옮긴다. 언뜻 외로워 보이지만 '없음'에서 '있음'을 떠올리는 철학적 휴머니즘을 담은 그림이다. 관훈동 노화랑에서 2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 10호부터 150호 크기의 '부재(Nonexistence)' 시리즈 21점이 전시된다. (02)73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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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정보영= 열린 방문 틈으로 새나온 온기 어린 빛은 마당에 놓인 쓸쓸한 촛불과 대조를 이룬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관객은 고개를 들어 겨울 해질녘의 검푸른 하늘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정보영(39)의 작품 '푸른 시간(Blue Hour)'이다.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빛, 시간의 경계'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는 이처럼 빛이 있어 어둠을 한번 더 보게 만드는 최근작 그림 20여 점을 선보였다. 눈 쌓인 마당이 보이는 방 안 창틀에도, 살짝 열린 창호지 문짝 옆이나 낡은 나무 책상 위, 거울 앞과 의자 위에도 촛불이 놓여있다. 켜둔 초는 "다 타서 사라지기까지 유한(有限)한 시간을 상징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카라바지오에서 렘브란트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빛의 표현과 에드워드 호퍼의 쓸쓸함의 미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청주의 한 사립미술관 만을 그림에 담는데, 부분적 분위기와 빛의 변주에 집중한 덕에 미술관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영화적 장면이 됐다. 그는 2008년 홍콩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5만5,000달러에 작품이 낙찰되는 등 '크리스티가 사랑하는 작가'로도 정평 나 있다. 전시는 23일까지. (02)730-7817.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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