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이윤종 아주캐피탈 사장

"리스크 관리시스템 구축 등 기업체질 바꿔 괄목 성장 이뤘죠" <br>대표 취임후 변화 필요성 절감<br>임원 80% 외부인으로 물갈이… 당기순이익 급증 등 승승장구 <br>"이젠 사업 외형 확장해야 할때… 시너지효과 큰 저축銀 꼭 인수"



이윤종(50ㆍ사진) 아주캐피탈 사장. 그는 사실 일반인들에게 낯익은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다. 하지만 금융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CEO로 이 사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잠재된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버클리룸.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날 이 사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실적과 업무현황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실은 '얼굴 한번 보여달라'는 기자들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아주의 실적은 어디에 내밀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2009년 125억원에 불과하던 당기순이익은 2011년 상반기에만 322억원을 기록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목에 힘을 줄 만도 했지만 이 대표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기자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기분이 좋겠다"는 질문이 나오자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떨린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간담회가 끝날 즈음 기자들은 이 대표의 작은 정성에 미소를 지었다. 이 대표는 친필로 쓴 엽서 한 장을 줬다. 엽서에는 '만년필처럼 샘솟는 아이디어와 멋진 기사 기대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일주일 후 이 대표를 서초동 아주캐피탈 본사에서 만났다. 그의 진면목을 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낮은 자세는 여전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에는 친절함이 가득했다. 먼저 아주캐피탈 대표이사로 몸 담은 뒤의 시간들을 물었다. "제가 아주캐피탈로 왔을 때가 금융위기 직후였어요. 아주그룹에서 캐피탈이 가장 큰 계열사였는데 금융위기로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잘 안 되니까요. 과거 방식으로는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사의 태생 자체가 자동차를 팔기 위한 물적 금융이어서 리스크 관리보다는 차를 몇 대 더 파는 데 관심이 많더군요. 리스크 관리와 영업을 균형 잡히게 성장하도록 바꾸는 게 시급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손을 댄 것이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장은 처음에는 핵심 포스트 몇 명만 바꾸려 했다. 하지만 경험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중간관리층을 키워야 고기 잡는 법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외부인력으로 물갈이를 했다. 임원의 80%를 외국계 컨설팅 회사와 금융회사 출신들로 바꿨다. 팀장급도 외국계 출신으로 바꿨다. "리스크 관리 시스템 등 새로운 일들을 많이 벌였지요. 걱정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것들에 대해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잘 극복해줬습니다. 아주캐피탈의 현재 모습은 다 직원들 덕분이지요." 이 대표의 출발은 일반 직장인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회계사 출신이다. 세동회계법인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장치혁 회장이 있는 고려합섬그룹(이하 고합그룹ㆍ현 KP케미칼)으로 적을 옮겼다. 장 회장의 조카이자 그의 대학교(서울대 경영학과) 동기였던 장충린 현 두산그룹 IR총괄상무의 소개로 연을 맺었다. 당시만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 동기들 가운데 제조업체로 직장을 옮긴 사례는 거의 없었다. 증권사나 종금사ㆍ은행 같은 금융회사의 인기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연유였을까. "회계사 생활을 5년 정도 했는데 주된 업무가 감사와 세무조정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일에 재미가 없더군요.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장 상무의 추천을 받고 고합그룹과 인연을 맺게 됐지요." 이 사장은 고합과 연을 맺으면서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회계업무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회계사 출신이라고 해서 회계팀에 배치한다면 옮기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전 그때 인터내셔널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고합그룹에서 제 의사를 받아줬지요." 이 대표는 고합그룹에서 인생 최고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고합그룹은 당시 독일 바스프그룹의 자회사인 바스프마그네틱을 인수했는데 이때 이 대표가 인수작업 책임자로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으로 독일에 부임해 2년을 보냈다. 이 대표는 독일에서의 시간이 가족들에게 해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바스프마그네틱은 외환위기가 벌어지면서 재매각해야 했습니다. 고합그룹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재매각하고 셈을 해보니 수익률이 250% 정도였습니다. 훌륭한 딜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매각대금을 한국에 보낼 때였습니다. 1998년 여름이었을 거예요. 1차 매각대금 2,000억원을 한국에 송금했는데 그때가 외환위기로 달러가 좀 귀했습니까. 귀국했더니 주변에서 애국했다고 칭찬해주더군요." 좀처럼 자기 자랑을 하지 않던 이 사장도 이 부분에서는 "정말 보람을 느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외환위기로 고합그룹이 해체되면서 이 대표는 다시 한번 도전을 시도했다. 처음 몸담은 곳은 토토사업을 하던 타이거풀스였다. 삼성 등 굵직한 회사의 유망한 젊은 두뇌들이 모여 꿈을 키웠지만 뜻이 맞지 않아 10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다음으로 옮긴 곳이 리젠트증권이었다. 이곳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금융 CEO 수업을 받게 된다. 이력만 보면 고합그룹 시절 뉴욕생명보험 이사를 포함해 2001년 리젠트화재 부사장, 2002년 리젠트증권 부사장, 2004년 브릿지증권 부사장까지 은행을 뺀 금융업 전반에서 경영훈련을 쌓았다. 하지만 항상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리젠트화재에서 유동성 문제를 정리해 신임을 받았지만 리젠트증권에 있을 때는 대주주가 잇따른 감자를 통해 사업보다 돈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고 다투기도 했다. 한국인 이사는 혼자였는데 가운데서 한국인 직원들과 다리 역할을 하려다 보니 상처를 많이 받았고, 결국 나오게 됐다. "직원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펀드 안에서 수익률 계산하듯이 감자를 통해 경영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아주에 온 것은 2005년. 이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에 아주캐피탈로 자리를 옮긴다. "아주에서 그룹 기획조정실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오래된 기업인데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이 모범이 될 만큼 건전해 지금까지 아주인(人)으로 남게 됐지요." 관심사인 저축은행 인수건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았다. 의지는 확고했다. "아주는 이제 다른 캐피털 회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역량이 뛰어 납니다. 다른 경쟁회사처럼 금융지주회사의 계열사도 아니지요. 이제는 사업 외형을 확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축은행이 제일 시너지가 높아요. 금융감독원도 저축은행에 여전업까지 허가해주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으로 경영철학을 물었다. 사자성어 하나쯤은 나올 줄 알았지만 역시 이 대표다웠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변화'입니다. '끊임없는 변화'. 자식들에게도, 직원들에게도 늘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바로 '고객'입니다. 고객이 지금의 아주캐피탈을 만들어줬으니까요" 이 대표는 군 회계장교 시절에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주말에는 빠짐없이 교회에 나간다. 교회 성가대장을 맡고 있다.
●He is
▦1961년 경남 사천 ▦1979년 부산남고 졸업 ▦1984년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 1993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1987년 세동회계법인 공인회계사 ▦1990년 고합뉴욕생명보험 이사 ▦2001년 리젠트화재 부사장 ▦2004년 브릿지증권 대표이사 부사장 ▦2005년 아주그룹 경영전략본부 전무 ▦2008년 아주그룹 경영전략본부장 부사장 ▦2009년 아주캐피탈 대표이사 사장
자동차금융이 주력사업… 대출자산 업계 2위

■ 아주캐피탈은 아주캐피탈은 지난 1994년 설립됐다. 2005년 대우캐피탈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아주레미콘으로 잘 알려진 아주산업이 최대주주다. 캐피털사로는 처음으로 2009년 6월 상장됐다. 국내 캐피털사는 50여개. 아주캐피탈의 대출자산은 4조2,000억원으로 현대캐피탈에 이어 2위다. 총 누적고객 수는 160만명이며 전국에 36개 지점, 5개 출장소를 두고 있다. 자동차금융이 주력사업이다. 국내 전 자동차 메이커의 신차ㆍ중고차를 포함해 벤츠ㆍBMWㆍ폭스바겐 등의 수입차, 버스ㆍ트럭 같은 상용차도 취급한다. 올 1ㆍ4분기 기준 영업실적의 82%를 자동차금융에서 올렸다. 지난해 '굿플러스' 브랜드를 론칭해 '굿플러스신차할부' '굿플러스중고차할부' '굿플러스오토리스' '굿플러스오토담보론' 등 다양한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 2년간 기업 내실이 견고해졌다. 한국GM 전속할부시장을 신규 확보한 데 이어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도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올라가 조달금리를 약 1%가량 낮췄다. 올 상반기에만도 32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벌써 지난해 전체 순이익보다 76%나 넘어섰다. 건전성지표인 연체율도 2009년 4.7%, 2010년 4.2%, 2011년 상반기 3.7%로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주관 소비자만족자율관리 프로그램(CCMS) 인증을 받았고 한국표준협회 고객만족 부문 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캐피털사로는 처음이다.
트위터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신세대 CEO'

■ 이윤종 대표는 이윤종 대표는 중후한 외모와 달리 신세대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격식을 따지다 보면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없고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직원들에게는 늘 변화와 스피드를 강조한다. 시간만 축내는 변화가 아닌 속도전을 수반한 변화다. 그래서 업무보고를 받을 때도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휴대폰 통화도 상관없고 문자메시지도 개의치 않는다. 아주캐피탈의 한 직원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일반직원들하고도 소통을 자주 시도한다"며 "20년이 넘는 기간을 임원으로 보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1990년 고합그룹에 합류하면서부터 임원 자리에 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1987년이니 평직원 생활은 3년에 불과하고 7배에 달하는 시간을 임원으로 보낸 셈이다. 오랜 임원생활로 '고공 플레이'에 익숙할 법도 한데 몸에 밴 낮은 자세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이 대표의 '절친'으로 알려진 이성규 유암코 사장에게 인물평을 부탁했다. 이 사장과 이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동창이다. 학창시절에는 말을 나눠본 적이 거의 없고 사회생활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 사장은 "외환위기 당시 고합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인품이 남달랐다"며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속 회사가 무너지고 이직을 해야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도 편안한 이상과 품성을 유지한 것을 보면 존경스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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