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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거래를 계속하시려면 마스크를 벗어주십시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헬멧이나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눌러 써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우면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돈을 찾지 못한다. 또 이체 30분 후 찾을 수 있는 지연인출제의 기준이 현행 3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아진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 금융사기 근절 후속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금융사기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전국 은행 ATM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장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관련 시스템을 시범 운영했던 IBK기업은행의 모델을 내년부터 모든 은행에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제공했던 곳을 포함해 복수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시스템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수의 시중은행들이 차례로 복수의 안면인식 개발업체와 면담해 오류 여부나 도입 실효성을 살펴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전산부서 관계자는 "금융사기 예방 차원에서 과거 몇몇 은행이 안면인식 시스템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인식률을 높이면 오류가 많이 생기고 인식률을 낮추면 실효성이 없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무산됐었다"면서 "최근 당국의 의견을 받고 한 업체가 개발한 안면인식 시스템의 완전성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안면인식 시스템을 모든 은행의 ATM에 탑재하려는 것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금융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다. 보이스피싱 사기의 인출책 대부분이 안면을 가린 채 돈을 뽑아가는데 CCTV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금융당국은 안면인식 시스템이 도입되면 금융사기로 사기범이 돈을 인출하더라도 검거가 한층 수월해질 뿐 아니라 예방 효과까지 기대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금감원은 계좌이체지연인출제 역시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모든 시중은행들은 상반기 중 300만원 이상이 계좌 이체된 경우 지연인출 시간을 기존의 10분에서 30분으로 연장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에 더해 내년부터는 지연인출제 금액 기준을 100만원으로 낮출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체금액이 100만원을 넘는 건수는 전체의 2.2%에 불과하다"면서 "이 중 상당 부분이 금융사기에 연루된 만큼 불편보다는 범죄예방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은행에서는 이 같은 금감원의 금융사기 근절 행보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추가 비용이 가장 큰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비스 이용 수수료가 폐지된 후 은행 입장에서는 ATM 유지 자체가 비용으로 인식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모든 ATM에 추가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객 불편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다수의 선량한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IBK기업은행이 강북의 한 지점에서 시범 운영하던 안면인식 시스템을 중단한 이유도 고객불만이 가장 컸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화상을 입어 불가피하게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고객 등을 중심으로 항의 사례가 많았고 그렇지 않은 고객들도 아예 안면인식 시스템이 장착된 ATM 이용을 꺼렸다"고 전했다. 지연인출제 강화를 두고도 "100만원 이상 이체하는 경우가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생기거나 긴급히 돈을 보내야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당국은 물론 전문가들도 금융사기 예방의 실익이 들어가는 비용이나 불편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ATM 역시 은행의 지점 창구 같은 역할을 하는 만큼 은행이 나서서 고객의 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개발업체의 시스템 개발비용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매입이 아니라 유지보수를 포함한 임대 개념으로 안면인식 시스템을 구매한다면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규칙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편익과 비용의 정도를 고려하면 되는 것으로 얼굴을 식별해야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해서 인권이 침해된다거나 지나친 불편을 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출입국시 공항 검색대에서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얼굴을 확인하는 것처럼 은행 거래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설 교수는 그러면서 "날로 교묘해지는 금융사기를 볼 때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연인출제를 강화하는 것은 사기 방지를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에 따르면 금융사기 근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100명이 800만원씩 보이스피싱 등을 통해 피해를 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