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섰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부정적인 패러다임이나 관행을 고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과거 5년간 우리는 병을 치유하는데 급급했을 뿐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한 노력은 미흡했다. 이제 더 이상 미적거릴 여유가 없다. 미국 등 선진국과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고, 중국 등 후발 개도국들은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이 모두 잘 사는 사회`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민이 모두 잘 살려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모두 힘을 합쳐 뛰어야 한다. 그저 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뉴 스타트(New Start)`는 국민 통합을 통해 우리의 엄청난 잠재력을 분출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 우리는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중심축으로 떠오를 수 있다.
◇경제주체간 협력하고 존중하자=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신년사를 통해 “정치개혁을 통해 더 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약속은 그저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돼야 한다. 정치권은 늘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선거나 총선 때가 되면 대기업 회장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해외출장을 떠난다. 그만큼 정치가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증거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정부의 역할은 규칙을 만들고 준수 여부를 관리, 감시하는데 그쳐야지 코치 역할까지 떠맡게 되면 게임(국가경영)은 엉망이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 기업 등이 자신의 영역에 충실할 수 있도록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기업, 금융, 노동 등 사회 각 부문의 선진화를 위해 일관되고 보편적인 기준을 도입한 후 이것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 역시 집단소송제 등 다소 불리한 제도라도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국가시스템 관리, 기업은 투명ㆍ효율 경영을 통한 수익 및 고용확대, 노조는 합리적인 권익요구에 주력할 때라야 국가경쟁력은 비로소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현안은 민주적으로 풀자=어느 정부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유혹을 느낀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이런 유혹은 더욱 절실해진다. 하지만 `조급증`을 떨쳐버려야 한다. 두고두고 화근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DJ정부가 추진한 빅딜이다. 빅딜로 새로이 출범한 기업 가운데 성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아직도 국민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주고 있다. 기업, 노조 등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주 5일 근무제 등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은 `뿌리깊은 나무`처럼 오래 갈 수 있다. DJ 정부 출범 당시 개혁작업에 참여했던 김태동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은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이제 정책의 불량률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거쳐 확정된 정책이라야 이해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ㆍ사ㆍ정 모두 경쟁력 높이자=정부, 기업 등 경제주체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나가려면 각종 현안에 대한 협의를 상설화해야 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정부, 기업, 노동계, 학계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경쟁력 강화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노사간의 고용 및 근로조건 협의를 위한 노사정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가경쟁력 제고 방안을 논의하는 협의체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대기업들은 전경련 등을 통해 노동시장, 성장산업 육성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행히 새 정부도 이 같은 경쟁력 확충 방안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이동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은 “노무현 정부는 친(親)기업적 정책을 수립, 집행할 것”이라며 “전경련 등 재계가 요구하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구성 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