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벽산그룹/돈독한 기독신앙 직장예배 40년(재벌)

◎“왼손이 한일 오른손이 모르게” 보수적/영상·정보통신 등 미래산업 진출 박차『정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벽산가족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3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중앙극장. 경인지역 1천여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계랭킹 30위(95년 매출 1조3천억원, 종업원 5천명)의 벽산그룹 시무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신년축하 예배」부터 시작됐다. 장로인 김희철회장은 이날 시무식에서 『저희들을 위해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시는 목사님, 거룩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가대원 여러분께 우선 감사를 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벽산의 기업문화는 한마디로 「기독교문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는 반드시 예배로 시작된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서울·경기지역 임직원과 가족을 초청, 성탄축하음악예배(일명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갖는다. 이런 문화 가운데서도 백미는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직장예배. 벽산은 국내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이다. 그룹 창립 초창기인 지난 56년 서울 종로에 위치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를 가진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가 열린다. 벽산이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가는데는 회장단과 최고경영진의 독실한 신앙에서 비롯된다. 김인득 명예회장(82)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승동교회에 40여년이 넘게 다닐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장남인 김희철 회장(60)도 같은 교회 장로로 경영과 선교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남인 김희용(54)부회장과 3남인 김희근(51)부회장 등 회장단 전체가 신암심이 깊다. 그룹 전체 이사급 이상 77명의 임원 가운데 60% 정도인 40여명이 기독교나 카톨릭 신자다. 『초창기 벽산의 주력사업은 극장업이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일요일은 극장으로서는 「대목」이었고, 일요예배를 못하니까 평일날 직장에서 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게 직장예배의 계기가 됐다』는게 벽산의 설명이다. 벽산에서는 일요예비를 보기위해 제조업에 진출키로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벽산은 단성사, 피카다리 등 당시 호황을 구가하던 몇개 극장을 처분하고 (주)벽산의 전신인 한국스레트를 인수해 주력업종을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사과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설명해야 모른다. 직접 먹여봐야 한다』는 것은 김명예회장의 선교관이다. 그러나 벽산은 『너무 기독교에 몰입된 기업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기독교문화에 외곬인 기업으로 비치는 것을 부정한다. 실제로 중견간부나 평사원 등 하위직으로 내려올수록 상대적으로 기독교인이 적다. 『기독교는 벽산인에게 필수과목은 아니다. 단지 회사나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교양과목』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노조가 결성되고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그룹내 기독교문화는 점차 엷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채용에서도 기독교인을 특별히 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는 아직도 벽산정신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독교와 함께 벽산을 대표하는 특성으로 꼽아온 보수적인 이미지도 모두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벽산인들은 농기계(동양물산기업), 건축자재((주)벽산), 건설(벽산건설) 등 3대 주력기업이 비소비재를 다루다보니 벽산이 자연스럽게 외부노출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같은 결과의 가장 큰 원인은 「왼손이 한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기독교 정신을 강조해온 김명예회장의 기업관이 노출을 자제토록 만든 가장 큰 이유라는게 이들의 지적이다. 지난 91년부터 경영권은 물려받은 김희철 회장의 경영철학도 보수경영에 한몫을 하고있다. 창업자가 공격적이라면 2세 경영자는 통상 선대의 성과를 지키는데 힘을 쏟는다는게 국내 기업들의 일반적인 현상. 김회장의 경영철학은 「SLOW BUT STEADY」다. 사람 자체를 중시하는 독특한 인재관도 이 그룹의 문화를 엿보게 한다.『신입사원 채용시에도 출신대학보다는 어떤 심성의 사람인가가 체크 포인트다. 대학은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소양을 기르는 곳이라는 판단에서다』. 벽산이 공식적으로 『벽산 신입사원 가운데는 소위 명문대학 출신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그런면에서 신입사원의 재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그러나 벽산이 계속해서 보수적인 기업으로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입사후 제품광고는 몇번 목격했으나 그룹 이미지 광고는 기억에 없다』는 5년 경력의 한 사원은 『건자재, 건설, 농기계에서 영상, 정보통신 등 소프트하고 소비자와 연결되는 분야로 변신도 꾀하고 있는 만큼 벽산도 변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그룹측도 『기존 건설, 농기계, 건자재 등 기존사업과 에너지, 화학, 금융 등 신규사업 6개사업을 축으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힌다. 영화를 중심으로 한 영상사업,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사업도 중장기 사업계획에 포함돼 있다. 이를통해 2000년 약 8천6백여명의 임직원이 건설부문 1조7천5백억원, 건자재부문 8천9백억원, 유통부문 7천3백억원, 기계부문 5천8백억원 등 총 매출 5조원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야심찬 전략이다. 김회장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 과거와 같은 제품, 과거와 같은 노력은 답습하지 않겠다』고 밝혀 대대적인 변신을 예고했다. 『과거의 틀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벽산으로 태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게 그룹의 설명이다. 선명한 기업 색깔을 유지해온 벽산이 21세기 경쟁력 확보방안으로 어떤 기업문화를 채택할 지 주목거리다.<정승량> ◎벽산 125빌딩/대가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외관 해칠까 우려 그룹로고 5년간 못걸어/지상·지하 30층 창사 40주년 맞아 91년완공 서울역 광장 맞은편에 있는 벽산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은 국내 건축설계분야의 대가로 지난 86년 타계한 김수근 선생의 마지막 작품이다. 밝은 회백과 모서리부분이 곡선으로 처리된 특이한 외관과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구조로 건축전문가는 물론 세인의 입에도 자주 오르내릴 정도로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주변에 밀집해 있는 정방형 빌딩과는 대조적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연출해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벽산은 이 빌딩이 서울역광장에서 바라볼때 정면성을 강조했고 남산의 경관을 가리는 것을 최소화하는데 촛점이 맞춰졌다고 말한다. 지하 6층, 지상 24층 규모로 높이는 지상에서 98.6m. 약 3천명이 상주할 수 있으며 지난 91년 그룹 40주년에 맞춰 완공됐다. 그러나 8년여에 걸쳐 이 건물이 완공되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다. 기본 설계를 맡은 사람이 착공 2년만에 사망했고, 당초 건축주이던 정우개발이 부도로 쓰러져 벽산으로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당초 백화점을 짓기로하고 공사를 시작했던 정우개발이 87년 법정관리상태로 넘어가면서 골조만 세워진채 공사가 중단되자 벽산이 인수, 공사를 재개했다. 벽산은 이 빌딩 입주후 10개월만에 공사중이던 행주대교가 붕괴되는 바람에 또다시 「박복한 건물」이라며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벽산 125」는 이 건물이 용산구 동자동 12­5번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벽산그룹 임직원들은 아직도 이 건물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빌딩외관을 해친다고 판단, 외부에 그룹로고와 사명을 거는 일조차 한동안 주저했을 정도. 벽산은 지난해에야 그룹로고와 사명을 건물에 부착했다. ◎김희철 회장 신앙심 깊은 장로/원자력공학 전문가 69년 과기처 1급 특채 실력파/회장취임후 외부노출 삼가며 종교·문화활동 힘써 김희철 회장은 창업자인 김인득 명예회장의 3남2녀중 장남으로 지난 91년 그룹 창립 40주년에 맞춰 경영권을 이어 받았다. 가족은 삼양통상 허정구 회장의 딸인 허영자(57)씨 사이에 2남 1녀. 경기고,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딴 후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지난 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계획에의해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박성용 금호그룹회장이 지난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면서 국내 30대그룹 회장 가운데 정규코스를 밟은 유일한 박사회장으로 남아있다. 71년 부친의 요청에 따라 건축자재업체인 (주)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경영에 참여, 82년 그룹부회장직을 수행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회장 취임 5년이 넘었으나 『부친이 계신데 나설 수 없다』며 외부노출을 삼가고 있다. 대신 음악가 및 악단, 문화행사 지원 등 기업메세나 중심의 활동이나 종교중심의 초청강연, 내부경영 활동에 진력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부친을 따라 다니며 교회와 나가 기독교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 부친, 형제들과 함께 승동교회에 다니고 있다. 장로인 김회장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데살라로니가 전서 5장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취미는 골프와 수영. 계열사 경영은 동생인 김희용 부회장과 김희근 부회장이 각각 주력기업인 동양물산기업과 벽산건설을 챙기고 김회장이 (주)벽산과 그룹경영을 총괄하는 3각 구도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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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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