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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확천금을 꿈꾸는 투기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19세기 말 농업이 경제의 원동력이던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다. 당시 인천미두시장과 군산미두시장 등에서 쌀 선물 투기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왔다. 대다수가 소작농이라 큰 재물을 모아 신분상승을 꾀하기란 꿈도 꾸기 힘든 탓에 쌀 선물 투기는 세인들 사이에서 곧잘 회자됐다.
"아무개가 투기로 큰 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현재의 증권거래소인 조선취인소가 1932년 설립된 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천미두장의 반복창씨와 경선증권가의 조준호씨가 대표적 인물이다. 특히 반씨의 경우 어깨 너머 배운 기법으로 큰 돈을 벌어 미두시장 일개 사환에서 조선 최고 갑부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과한 욕심 탓에 일순간 재산을 날리고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쌀 선물 투기는 희망을 잃어버린 일제강점기에 극에 달했다. 당시 미두매매기법이 담긴 '일확천금비법(사진)'이 이른바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 대박을 꿈꾸던 농민들은 일확천금비법을 핵심 교재(?) 삼아 경성과 인천ㆍ군산 등 미두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문제는 당시 일확천금을 꿈꾸던 이들이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는커녕 미두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조차 하지 않은 채 투자가 아닌 투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일확천금비법에 기초적인 내용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정보는 없었다. 단지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친 뒤 운에 따라 투기에 나섰다 결국 가진 밑천을 모두 날리고 쪽박 차는 신세로 전락했다.
일확천금이란 단번에 천금을 움켜쥔다는 뜻이다. 힘들이지 않고 한방에 큰 재물을 얻는다는 것으로 투기꾼으로 전락한 이들의 꿈이자 현재 증시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고질병이다.
정치 테마주 등으로 대표되는 한탕주의 투기는 여전히 증시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일확천금비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던 이들의 후예들이 '투기=패가망신'이라는 선조들의 뒤를 여전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과거 발자취인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카더라' 통신이나 풍문ㆍ테마 등 헛된 욕망에 휩싸인 투자는 투기로 전락하고 이는 대규모 손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증시의 역사는 "단기적인 투기보다 중장기적 안목과 자료 분석 등 노력을 기반으로 투자에 나서야 원하는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