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세훈 서울 시장은 영등포의 한 노숙인 쉼터를 찾았다. 지난해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현장 시민과의 소통'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오 시장은 평소에도 종종 서울역 인근 노숙인 급식소를 찾아 현장을 둘러볼 만큼 노숙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민선 4기 시절에는 노숙인 및 저소득층 시민의 정신적 빈곤 탈출과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희망의 인문학' 강좌를 시작했다. 희망의 인문학 과정은 서울형 그물망 복지와 더불어 자립ㆍ자활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오세훈표 복지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이날 현장 대화의 주제는 '노숙인이 말하는 희망과 꿈'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인문학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표현이다. 오 시장은 이날 노숙인 쉼터에 거주하면서 겪는 문제점 등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방문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통해 자립의 의지를 키우게 됐다는 사연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날 대화에 참여한 대다수의 노숙인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꿈보다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한 노숙인은 "쉼터에 온 이후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는데 6개월 만에 부당해고를 당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청ㆍ구청 등을 다 찾아갔지만 기다리라고만 할 뿐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노숙인은 "시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는 3개월 이하 단기가 대다수"라면서 "장기적인 일자리를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처럼 쉼터의 노숙인에게도 일자리는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느냐 아니면 노숙의 어두운 그늘로 다시 빠져 드느냐를 결정짓는 잣대가 됐다. 예년처럼 단순히 정부에게 손만 내미는 모습과는 달라져 있었다. 희망보다 절망을, 꿈보다 현실을 이야기했지만 자립에 대한 의지는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그렇다면 관건은 노숙인의 이러한 열정과 의지를 오 시장이 정책에 어떻게 반영하는가 하는 점이다.
오 시장은 이날 "일할 의욕이 있는 분에게는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라면서 "일자리를 원하는 분에게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있도록 예산을 충분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오 시장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