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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의 회계 정보는 질적으로 수준이 낮다. 국제기구가 평가하는 회계 투명성 순위는 우리나라의 경제 순위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수많은 투자자를 울린 동양 사태도 투명하지 못한 회계에서 비롯됐다. 불투명한 회계는 자본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성장을 가로막는다. 서울경제신문은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은 한국공인회계사 및 삼정KPMG·딜로이트안진·EY한영 등 대형 회계법인과 공동으로 미국·영국·독일 등 자본 시장이 발달한 국가를 찾아 그들의 선진화된 회계 제도를 살펴봤다. 회계 투명성을 높일 방안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지난 2002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회계 감사가 잘못돼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엔론·월드컴 등 대형 회계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잘못된 회계 감사가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존에 회계법인의 자율에 맡기던 회계 감독 체계의 패러다임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임스 도티(사진)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 의장은 위원회 설립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도티 의장은 "미국의 경우 전체 가구의 50% 이상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며 "퇴직연금과 주택구입 비용, 자녀 교육비까지 많은 돈이 주식 시장에 투자되고 있기 때문에 재무보고서의 질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회계 감독 체계는 '사베인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이 제정된 2002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미국은 1930년대부터 줄곧 회계 정보에 대한 책임을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의 자율적인 감리에 맡겨왔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 간 상호평가(Peer Group Review)'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형 회계법인인 삼정이 한영의 회계 품질을 감리하고 한영이 안진을 감리하는 식이다. 하지만 연이어 터진 대형 분식회계 사건으로 이 같은 자율 감리는 독립적 외부 기구에 의한 외부 감리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다. PCAOB는 2002년 회계법인의 품질 관리만을 전문적으로 감리하기 위해 세워졌다.
PCAOB의 감리 체계는 조직과 범위 측면에서 물 샐 틈이 없다. PCAOB 전체 직원 800명 가운데 500명이 조사관이다. 보통 PCAOB 조사관은 5~6명이 팀을 이뤄 회계법인의 회계 품질을 감리하는데 이들은 회계사 자격증을 갖추고 최소 15년 이상 실제로 회계 감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인원들로 꾸려진다. 팀장급은 최소 20년 이상의 회계 감사 경험을 가지고 있다.
도티 의장은 "회계법인들을 감리하기 위해서는 조사관도 최소한 그들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PCAOB는 매년 상장사 100개 이상의 회계 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 10여곳의 품질을 감리하고 그 결과를 공시해 투자자에게 알린다. 미국에 등록된 회계법인의 품질만 감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상장된 회사를 감사하는 전 세계 회계법인이 감리 대상이다. 미국에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상장된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 감사를 맡는 삼일·삼정·안진 등 우리나라 회계법인도 3년에 한 번씩 PCAOB의 감리를 받는다.
PCAOB가 이처럼 회계법인에 대한 감리를 철저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회계법인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도티 의장은 "회계 감사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회사의 재무제표를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하지만 회계법인들은 회계 감사를 포함해 기업의 경영진과 많은 거래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자율 규제하에서는 회계법인이 기업 경영진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밝혔다.
회계법인들도 이 같은 외부 규제 강화를 통한 회계 품질 강화에 동의하고 있다. 제임스 리디 미국KPMG 뉴욕사무소 감사 부문 부대표는 "금융 서비스는 규제 산업"이라며 "회계법인이 자본 시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무를 생각한다면 정부의 규제는 당연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외부건 내부건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지적할 수 있는 규제가 있다면 회계법인의 회계 품질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