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처음 '인터넷 이력서' 만들어 취업포털 신시장 개척
관계기관 무작정 찾아가 '내가 하는 일 도와줘야 한다' 주효
한때 시장 80% 이상 점유했지만 후발주자 공세에 흔들리기도
"초심으로 돌아가 취업 본질 집중… 일자리 넘어 일거리 개발"
"기업은 인재가 없다 하고 개인은 일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나 아니면 안 되는 걸 성공시키고 나답게 살 때 미래가 있습니다."
이광석(41·사진) 인크루트 대표는 국내 '인터넷 창업' 1세대 출신으로 지난 1998년 신문 구인란을 최초로 인터넷으로 옮겨와 '취업 포털'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다.
사업의 시작은 일면 단순했다. "대기업까지 구조조정을 해서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다는데 인터넷 이력서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동료의 전화 한 통이 운명을 바꾼 것. 인터넷 창업시장에 몸담아 데이터베이스를 분류, 정리하는 일에 이미 도가 텄던 그는 이력서 시장을 인터넷으로 옮길 경우 뽑는 사람과 뽑히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무한한 새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는 이 시작은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그의 신념이 없었다면 등장하기 힘들었다. 검색엔진 야후가 한국에 진출한 1997년 이후 당시 국내 인터넷 1세대 사이에서는 인터넷을 평정할 서비스가 무엇이 되겠느냐는 주제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그는 국내 최초로 한영 디렉토리서비스인 '집(ZIP!)'을 개발하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저장·조직·분류하는 서비스를 선보인 상태였다. 모두가 검색서비스가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 사이 그는 좀 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역시 검색서비스가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인터넷의 주류가 되기보다는 '나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찾아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실제 문구점에서 파는 서류 이력서와는 달리 인터넷 이력서는 학력이든 경력이든 칸 제한 없이 원하는 방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구직자는 원하는 대로 이력서를 설계하며 자신을 선보일 수 있고 기업도 이력서에 갇히지 않은 살아 있는 인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대표는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 평생직장의 시대가 갔다고 생각했다"며 "평생직업의 시대를 맞아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천문학자를 꿈꾸었던 그가 인터넷이라는 신세계에 뛰어든 것도 이러한 신념이 작용했다. 고교 시절 그는 천재 소년 송유근의 스승으로 알려진 박석재 전 한국천문연구원장과 대화를 나눈 뒤 '별 보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당시까지는 우주의 나이가 100억~200억년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우주의 진짜 나이를 밝혀내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대학 원서접수 첫날 첫 번째로 연세대 우주천문학과에 지원서를 내고 합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과의 만남은 '날카로운 첫 키스'와도 같았다. 천문학자를 꿈꾸던 청년이 인터넷이라는 우주를 발견하게 된 것은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만큼 운명적이었다. 그는 "1994년에 인터넷이 상용화됐는데 웹상에 수많은 사이트가 각자 존재하면서 동시에 연결돼 있는 걸 보고 '이게 우주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넷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문턱이 높았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는 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이런 바람으로 PC통신 나우누리에서 동호회 성격의 '인터넷스터디포럼(ISF)' 운영자로 활동하며 디렉토리서비스 '집'을 개발했다.
부모님께 평생 창업이란 것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이즈음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리게 된다. 서비스 개발은 동호회로 한계가 있었다. 대학을 다니며 취미처럼 할 수도 없었다. 전공 18학점을 신청해놓고 인터넷카페에서 작업하느라 한 달 넘게 학교를 제대로 구경조차 못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지금 바로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는 다음날 바로 휴학서류를 냈다. 그리고 아직까지 대학 졸업장을 갖지 못했다.
국가 주도의 벤처 지원도 전무하던 시절 20대 젊은이가 뛰어든 사업의 세계는 그야말로 '맨땅에 우물 파기'였다. 사무실, 기업 전용 인터넷선 등은 물론 투자금까지 직접 조달해야 했다. 하지만 24세 젊은이의 신념은 '사업가 이광석'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당시 정보통신진흥협회 등을 찾아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도와줘야 한다. 내가 없어지면 내가 하는 일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자신이 아니면 이 일이 없어진다는 신념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영업맨 스타일은 아닌 그를 승부사로 바꾼 것도 자신의 20대를 사로잡은 신념이었던 셈이다.
이 부분에서 그는 "모든 청춘은 '체인지 메이커'가 될 수 있는 존재"라고 힘주어 말했다. 당시 청년들은 사회가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이다 보니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이 인터넷을 택한 것도 권력 중심 지향적인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나름의 신념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요즘 20~30대들은 남들이 간 길로만 가려는 경향이 있고 구직환경에 좌절하는데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청년 자신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작금의 인크루트 역시 이 같은 현실을 넘어 청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의의를 둔다고 그는 덧붙였다.
업계 최초로 취업 포털을 만들었던 그는 2005년 '뉴소프트기술'을 흡수합병하면서 코스닥에 상장, '주식부자' 반열에도 올랐다. 한때 취업 포털 시장의 80% 이상 점유하는 등 흔들림 없는 아성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터널을 통과하던 2010년 인크루트를 분사해 상장기업에서 벗어났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가 컸다. 그는 "상장이라는 굴레를 벗고 초심으로 돌아가 정말 본질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취업의 본질, 구성원과의 소통에서 '인크루트'도 나오는 것이라 생각해 본질에 집중해서 해내야 한다는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인크루트는 취업난 문제 해결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컨설팅을 실시해 3개월 안에 취업시키는가 하면 취업학교 등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열고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에 취준생들을 위로하는 '지친 하루' 동영상 등을 올리며 다가가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일자리'를 넘어 '일거리'를 찾는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기업이 원하는 자리에 나를 맞추는 게 일자리라면 일거리는 개개인의 기술·능력에 기반해 이를 필요로 하는 회사를 발굴해 이어주는 직접거래 시장에 가깝다.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일거리는 개발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 대표는 "취직을 못한 2030세대도 회사에서 쫓겨나 다시 일터 복귀를 노리는 4050세대도 매개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꿈꾸고 꿈꾸는 것을 성공시키는 일을 앞으로도 인크루트가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은퇴세대 능력 거래할 수 있는 공간 '아홉' 상반기 중 선뵐 것 ●인크루트 다음 목표는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팔아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은 기존 채용 시장의 한계에서 비롯됐다. 정규직 시장에 진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은퇴한 세대와 직업을 갖지 못한 젊은 세대가 자신의 능력을 살릴 기회가 없다는 문제를 기존 취업 포털에서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그는 "특히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날로 줄면서 취업준비생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아르바이트나 인턴십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본인의 재능이나 능력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재능의 종류는 홈서비스·사업지원 등 8가지 분야에서 문서작성부터 투자까지 다양한 방면을 아우른다. 이러한 재능을 사고파는 일을 중개하면서 소액의 경우 수수료도 0원으로 할 계획이다. 취업 포털에 17년간 몸담으면서 그가 갖고 있는 인재상도 궁금한 대목이다. 그는 인재상으로 최우선적으로 '기업가 자질'을 얘기했다. 그는 "기업가라는 게 돈을 버는 자질이 아니라 어떤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것에 대해 아이디어를 갖고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자질은 스스로 실전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스펙을 계속 쌓기보다는 하루빨리 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취준생들이 인턴십이 효과가 없다고 하는데 더 큰 문제는 시간만 보내는 형태로 인턴십의 취지가 변한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게 인크루트의 취업학교다. 취업학교에 입학할 때는 '대기업만 고집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2~3년 취업준비를 했지만 성과가 없었던 학생들이 대다수다. 서약을 하고 나면 인사 등 각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이 지원자에게 적성검사부터 자기소개서·면접 등 모든 과정에 대해 컨설팅을 해준다. 그는 중소기업도 지원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기업이 10만개가 넘어도 자기가 볼 수 있는 건 제한되기 때문에 지원자에게 맞는 기업을 소개해주고 하루빨리 경력을 쌓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
●이광석 대표는 |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