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학벌타파 공감 하지만… 자칫 '2008년 인턴' 전철 우려도

[금융권 고졸채용의 명암] <br>고졸사원 학업 등 지원땐 학력 인플레도 해결 가능 <br>체계적 인력관리 못하면 '실속없는 이벤트' 될수도 <br>사내 화학적 결합도 관건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청년실업 문제가 더욱 부각되자 정부는 금융권 등에 인턴 채용 확대를 독려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인턴으로 채용한 뒤 업무도 배우게 하고 일정액의 보수도 받게 한 뒤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췄다고 판단되면 시험을 통해 채용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대학생은 물론 금융권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은행별로 많게는 2,000명 정도의 인턴을 채용해 업무보조 등을 맡겼지만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만 남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정부가 밀어붙여 따라가기는 했지만 인턴 채용 후 제대로 된 인력관리를 한 은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인턴의 정규직 전환율도 매우 낮았다. 공공기관마저 정규직 전환율이 4.1%에 그칠 정도였다. 은행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현재는 다른 기업에 취직을 한 권모(28)씨는 "낮은 월급에다 단순업무는 물론 영업까지…기억이 좋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업은행 방문을 계기로 금융권 등에서 전방위로 고졸 채용 바람이 확산되고 있지만 순기능 못지않게 부작용을 말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고졸 채용을 확대해 대졸 만능주의를 버리고 학벌 인플레이션을 차단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갑작스러운 제도 추진이 가져올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인사담당자도 "마치 이벤트처럼 인턴 채용을 확대했던 그런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은행이 철저한 인력운용 계획에 맞춰 고졸 채용을 차근차근하게 진행하기보다는 2008년의 인턴 채용처럼 이벤트성으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은행, 고졸 채용 확대 준비가 덜됐다=산업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고의 스펙을 갖춘 인재들을 지방 영업점에 내려보내면 얼마 뒤 사표를 낸다. 그들에게 단순업무를 시키거나 지방에 내려보낼 때는 마음이 참 아프다"고 말했다. 고졸 채용을 확대한 배경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은행 창구업무 등은 고졸에게 맡기고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인재들은 기업금융이나 자금운용 등만을 맡겨 업무 분담이 쉬워진다는 이야기다. 또 "고졸 채용이 늘어나고 이들이 학업과 일터를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학력 인플레이션도 해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은행들이 고졸 채용을 확대하고 이들을 수용할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냐는 점이다. 우선 원리만 따지면 고졸들이 대졸과 경쟁해 기업금융 분야 등에 취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고졸의 상당 부분을 은행 창구업무나 사무보조로 채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의 신분도 비정규직이다. 2년이 지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고졸들이 정규직으로 전환은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업무에는 제약이 따른다"면서 "고졸들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소외감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가 21일 고졸 채용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수 고졸 직원에 대해 취업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야간대학 진학 때 학자금을 지원하고 정규직 전환을 확대하는 등 인사관리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이런 이유다. ◇화학적 결합도 관건=현재 우리나라 은행의 창구직원은 전문대 혹은 4년제 대학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고졸들이 은행권에 취업한 뒤 기존 직원들과의 결합이 쉽게 될 것이냐는 문제점이 남는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고졸들의 채용은 환영한다"면서도 "하지만 기존 은행원들이 취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데 반해 이들은 정책적 효과로 쉽게 취업했다는 점에서 융화가 잘될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은행의 업무영역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도 고졸 출신들의 연착륙에 대해 우려하게 만든다. 과거와 달리 창구직원들이 복잡한 투자상품 설명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는데 고졸 출신들이 충분한 교육 없이 100% 수용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고졸 채용 확대가 '허울뿐인 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졸자들과의 차등을 아예 없애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 임원은 "고졸 채용을 늘리는 것은 분명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낼 만하다"며 "하지만 인기영합을 위해 현실을 무시한 채 무조건 밀어붙일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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