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 이후 시행된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자들이 몰리면서 석 달 만에 신규 계좌 수가 5만개를 돌파했다.
2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우리∙한국∙미래에셋∙삼성∙신한금융투자 등 5개 증권사의 IRP 신규 계좌 수는 5만6,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투자증권이 1만8,197계좌로 가장 많은 신규 계좌를 개설했고 한국투자증권(1만6,273계좌), 미래에셋증권(1만413계좌)도 1만개를 넘어섰다. 이 밖에 삼성증권(7,300여계좌∙구체 수치 비공개)과 신한금융투자(4,146계좌) 등도 석 달 만에 다수의 신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IRP는 안정적인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기존 개인퇴직계좌(IRA) 제도를 보완한 퇴직연금 제도로 퇴직할 때 지급되는 퇴직금을 의무적으로 근로자 개인의 IRP 계좌로 이전시키도록 해 일시 수령에 따른 노후자금 탕진 등의 위험을 줄인 상품이다. 여기에 ▦운용기간 중 발생한 이자(배당)소득 비과세에 따른 과세이연 효과 ▦1,200만원 한도 추가납입 가능 ▦연간 400만원(연금저축 합산) 소득공제 혜택 등이 부여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진웅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차장은 "IRP처럼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연금저축은 세제혜택이나 연금수령을 받으려면 '가입기간 10년 이상'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5년 이내 해지하면 2.2%의 추징세를 물게 된다"며 "하지만 IRP는 의무 가입기간이 없고 해지에 따른 추징세도 없어 비교적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퇴직 근로자의 가입에 연말 소득공제 수요가 있는 재직 근로자들이 가세하며 가입자 수가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증권사들은 IRP를 증권사의 신먹거리로 보고 경품 지급, 최저 수수료 제시 등 물량 공세와 퇴직연금 학교, 노후자금 마련 아카데미 등 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체 간 유치경쟁이 가열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증권사가 숫자 불리기에만 급급해 실질적인 자금유입은 없는 '공계좌'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IRP 가입시 퇴직연금 가입 확인서나 원천징수 영수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같은 확인 절차 없이 무직 주부나 어린 아이까지 가입시켜 계좌 수를 늘리는 사례도 많다"며 "근로자 개인이 상품 설명을 듣고 가입하는 형태가 아닌 회사 특정 부서 담당자가 가입자 명단을 가지고 와 일괄 계약하는 방식의 계좌 불리기도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증권사 간 신규 가입을 주고받는 '바터 거래'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어 시장질서 훼손의 우려도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