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김인호 금성출판사 사장

"공평무사·정직… 한학서 배운 인문학적 가치가 경영 밑거름"

남다른 친화력·통찰력으로 교육·출판계 CEO만 30년

국내 첫 공부방 모델 도입… 부도 위기서 제2 전성기로

"차세대 교육 인성에 달려 지식·정보와 융합시킬 것"



김인호(71·사진) 금성출판사 사장의 카드 지갑은 본래의 가죽 색깔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낡아 있었다. 가죽이 군데군데 떨어지고 해져 안감이 그대로 드러난데다 네 귀퉁이마저 모두 닳아 카드를 빼내면 형체마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가 꺼내 보인 카드 지갑 한편에는 두 손자 손녀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적인 저녁 자리 뒤 실수로 법인카드로 계산하는 일을 막기 위해 개인 카드가 들어있는 쪽에 손주들 사진을 끼워둔다고 했다. '공평무사'를 강조하는 그의 언사는 매사에 이랬다. 이 때문인지 금성출판사는 직원·협력사 모두와 화합하는 합리적인 기업으로 명망이 높다.

김 사장은 스스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명명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한 산골에서 태어났다. 교육적 수혜나 경영자 정신 함양과는 거리가 먼 소외 지역이라 할 만하지만 그는 38세에 첫 임원으로 발탁됐고 43세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30여년 간 4개 기업의 대표직을 두루 거치는 등 국내에 보기 드문 교육·출판 분야의 '직업 CEO'로 활약해왔다.


김 사장이 꼽은 '생애 첫 교훈'은 단연 아버지와 함께한 어린 시절에 있었다. 그는 "다섯살 때부터 부친께 한학을 배웠고 그해 천자문을 뗐다"면서 "다양한 한학 서적에서 얻은 인문학적 가치가 평생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언급된 공평무사·정직·인화·성실·인성 등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가치는 모두 이 과정에서 닦인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김 사장은 인쇄업체인 삼화인쇄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보다 근면 성실하게 근무한 덕에 승진도 남보다 빨랐다. 이 무렵 그는 또 일본어에 눈을 떴다. 당시에는 반일감정이 커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조차 많지 않았다. 하지만 주로 일본과 기술교류가 이뤄지는 점을 감안해 일본어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수년간 새벽반 학원을 다니며 배웠다. 통찰력과 성실함 때문에 그리 오래가지 않아 그의 재능을 꽃피울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직장에서 일본 지사를 개설하면서 일본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그가 38세 나이로 첫 지사장에 발탁된 것. 성실성에 기반한 뛰어난 업무 능력 역시 수출 전선을 개척할 역군으로 인정받는 주요 배경이 됐음은 물론이다.

김 사장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특유의 친화력이다. 그의 친화력이 빛나는 일화로는 CEO 여정의 시작인 양지사 재직 시절을 들 수 있다. 1987년 당시 서울 남부의 '구로공단'은 민주화의 물결로 들끓었다. 그가 근무했던 양지사는 그 중에서도 강성 노조로 유명했다. CEO로 일한 지 불과 1년. 직원 앞에 선 40대 사장은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하지 않는 파업으로는 회사의 미래란 없다. 좋은 기회가 오면 다시 만나자"며 사의를 표했다. 세 시간가량 회의를 거친 노조는 김 사장의 퇴사를 막기 위해 만장일치로 자진 해산 결정을 내렸다. 짧은 재임 기간 동안 직원에 앞서 수고하고 사원 복지에 힘쓴 그의 노력을 직원들이 먼저 인정해준 것이다.

김 사장의 통찰력과 친화력은 52세였던 1995년 금성출판사 CEO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올해로 창사 49년이 된 금성출판사는 외환위기 이후 주력 상품인 전집 판매량이 3분의1까지 줄어들면서 부도 위기에까지 몰렸다. 교육 출판업계의 특성을 면밀히 관찰해온 그는 국내 최초의 전과목 공부방인 '푸르넷 공부방'을 회심의 카드로 꺼냈다. 당시 주류였던 주당 15분~ 30분간의 일대일 교육 방식으로는 학습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매일 학생을 모아 지도하는 공부방 모델의 필요성을 간파한 것이다. 금성출판사는 이렇게 탄생한 푸르넷 공부방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며 전집 매출로 한 시대를 구가하다 사라진 숱한 대형 출판사와는 다른 역사를 쓰게 됐다.

출판 1세대 대기업인 금성출판사는 본래 전집 제작과 판매에 주력하는 제조업체다. 특히 전집 판매를 기반으로 형성된 전국적인 영업조직이 유명했다. 그런데 그가 꺼내든 푸르넷 공부방 카드는 직원들에게 제조 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환골탈태'할 것을 전제로 하는 모델이었다. 무엇보다 영업조직의 동의 없이는 시행이 불가능했다. 부임 직후부터 영업조직을 껴안지 못해 단명했던 전임 사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 그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서도 조직을 넉넉히 아우르며 결국 또 다른 전성기를 일궈냈다. 조직의 매출이 회복되자 그는 경영위기 시절 중단한 상여금을 부활시킨 것은 물론 그간의 소급분까지 모두 챙겨 전직원에게 지급했다. 국내 4대 학습지가 이미 장악한 '난공불락'의 시장에서 선전하기 힘들 것이라던 세간의 통념도 이렇게 넘어섰다. 인재를 우대하고 실력대로 평가한다는 점이 알려지자 우수한 학습지 교사들이 앞다퉈 몰려온 것이다.

지금도 금성출판사는 출근 장부가 없고 지각이 없고 야근이 없는 '3무(無)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자신의 업무를 스스로 책임지고 감당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그는 예산 집행권은 물론 인사권 등 전권을 담당 부서장에게 일임한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실력대로 평가하는 공정한 인사와 경영을 CEO로서의 원칙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마음을 터놓고 직원과 함께 가면 기업은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며 "기업은 정직하게만 운영해도 매출이 오른다.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고지에 오른 푸르넷 공부방과 관련해 그는 차세대의 인성 교육에 가장 치중하고 싶다고 답했다. 바른 인성을 지닌 이들이 모일 때 조직이 시너지를 낸다는 게 오랜 CEO 생활 동안 그가 터득한 교훈이기도 했다. 김 사장은 "아이들과 매일 만나는 푸르넷 선생님들에게 '제2의 담임교사'라는 정신을 심어주려 가장 노력한다"며 "한동안 우리 교육에서 사라진 부분이지만 가장 치중해야 할 부분이 다름 아닌 인성"이라고 말했다.

차세대의 미래도 인성교육을 통해 찾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1980년대 어린이들이 전집에서 꿈과 창의력을 배웠다면 현 어린이들은 공부방과 학습지에서 교육과 인성을 배운다"면서 "단순히 책과 교재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지식과 인성 교육, 영상정보기술이 융합된 교육회사로 발전하며 CEO로서 받기만 해온 것들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 푸르넷 공부방은

그룹지도 통해 부담 낮추고 인성교육까지
온라인과 연계… 자기주도학습 습관 길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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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출판사의 대표적인 교육 브랜드인 '푸르넷 공부방'은 지난 2001년 출발한 국내 최초의 전 과목 공부방이다.

소그룹 토론학습과 개인별 맞춤지도를 병행하면서 교육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인기를 얻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푸르넷 공부방과 유치원생 대상인 '리틀푸르넷', 중학생 대상인 '푸르넷 에듀'로 운영되며 지난해 말 9,000점을 돌파해 올해 내 1만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인호 금성출판사 사장은 "개인 과외보다 공부방을 통한 그룹지도가 훨씬 교육 효과가 높다. 최근 주목 받는 토론학습이나 유대인들의 그룹 토론식 교육도 그룹지도의 일종"이라며 "여기에 체계적인 온·오프라인 학습 시스템과 인성교육이 더해지면서 학부모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푸르넷 공부방은 49년 전통의 금성출판사가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무렵 승부수로 도입한 신규 사업이다. 학습지 방문교사들의 지도시간이 15분 내외로 짧아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해결책을 찾던 중 공부방 모델을 도입하게 됐다. 그룹으로 모이니 교육비는 낮아진 반면 창의교육의 핵심인 토론 학습과 일대일 지도는 여전히 가능해 금성출판사에 '제2의 전성기'를 열어줄 수 있었다.

공부방 학생들은 온라인 학습프로그램으로 스스로 예습한 후 공부방에서 소그룹 학습을 통해 자기 주도 학습습관을 만들어갈 수 있다.

최근 금성출판사는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온라인 연계 교육을 넘어 교사들의 편차를 보완하기 위한 온라인 동영상 강의 등을 강화하며 교사와 학생 모두에 득이 되게 하고 있다.

김 사장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처럼 교사들의 실력 강화에 다방면으로 주력하고 있다"며 "30~40대 지도교사가 인성교육까지 책임지면서 교육시장 선도 기업의 역할을 감당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호 사장은
△1943년 충남 보령 △홍성고, 숭실대 농촌사회학과 △1986년 양지사 대표 △1992년 명지문화사 대표 △1994년 그래픽아트 대표 △1995년~ 금성출판사 사장 △2000년~ 한국검정교과서발행조합 대표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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