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계약서 안 쓰는 대한민국

알바서 영화·출판·하도급 거래까지…


대학생 김모(23)씨는 연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편의점에서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았다. 3개월가량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6시부터 11시까지 일하면서 받은 시급은 4,300원. 지난해 최저임금 4,580원에 못 미치는 돈이었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서울고용센터에 진정서를 냈고 이내 편의점주에게 전화가 왔다. "최저임금 미지급분을 보전해주겠으니 진정을 취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근로계약서 같은 것은 본 적도 없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근기록부를 핸드폰으로 찍어두고 급여기록도 보관했기에 부족분을 돌려받았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한푼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의 후진적 계약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우리 계약문화는 경제적 약자의 불만을 고조시켜 사회갈등을 부르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후진적 계약문화는 비단 아르바이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ㆍ출판업계 등 문화계뿐 아니라 기업 간 계약인 하도급거래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하청업체 4곳 중 1곳은 구두계약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서면계약을 체결한 곳 가운데 이중계약서 작성 요구를 받은 곳도 25%에 달한다.


심지어 부동산 등의 각종 계약서와 인허가 관련 서류 등도 허점투성이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많아져 사회 전반에 엄청난 마찰 비용을 발생시키고 더불어 관료들의 개입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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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약관작성 관행도 잘못된 계약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공정약관 시정건수는 120건으로 2008년 이후 5년 연속 100건을 넘었다.

사회 전반에 미성숙한 계약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경제규모는 2만달러인데 계약문화는 2,000달러 나라의 수준도 안 된다고 평가한다.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고용주나 원사업자들이 필요할 때 계약조건을 언제든 바꾸기 위해 서면계약을 꺼리고 구두계약을 하거나 이면계약(이중계약)을 하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며 "계약문화를 선진화하기 위한 의식개혁과 당국의 조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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