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업계가 초거대 공룡 자동차 업체의 탄생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인 제너럴모터스(GM)가 최근 르노ㆍ닛산과의 ‘3자동맹’ 구축협상 종료시한을 90일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달 후 나오는 결과에 따라 세계 자동차 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면 안되는 것이 GM-르노ㆍ닛산 ‘3각연대’ 아이디어가 지난해 총 106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며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한 GM의 릭 왜고너 최고경영자(CEO)의 발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생각은 기업 사냥꾼이자 GM의 4대 주주인 커크 커코리안의 머리에서 처음 나왔다. 커코리안은 지난달 말 GM 경영진에 보낸 서한을 통해 르노ㆍ닛산과 제휴를 맺고 회생을 도모할 것을 요구했다. 커코리안은 지난 95년에도 크라이슬러 자동차 인수하고 구조조정을 전격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3자동맹’ 추진에 대해 GM의 현 경영진이 아닌, 대주주 커코리안의 승리라고 풀이했다. 비즈니스위크는 커코리안이 왜고너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속도와 결과에 대해 석연치 않아 하기 때문에 닛산자동차를 기적적 회생으로 이끈 카를로스 곤에게 GM의 회생을 맡기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커코리안의 힘’은 곧 대주주인 기업 사냥꾼의 힘이다. ‘주주가 왕’인 주주자본주의에서 최대 주주는 기업경영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가진다. 주주의 이익이 최대화하고 주주가 나서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극치다.
한국은 97년 외환위기 때 IMF식 주주자본주의의 물결을 맞았다. 억지 춘향으로 주주자본주의라는 옷을 입은 지도 벌써 9년이 지났다. 하지만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꾸역꾸역 껴입은 탓인지 경제상황은 되레 악화됐다. 주주의 입김이 세져 배당이 늘고 소액 주주권리도 향상됐지만 기업 투자는 줄고 배당의 단맛은 외국인투자가들에게만 돌아가는 처지가 됐다. 주주들은 웃지만, 기업들은 우는 꼴이다.
영미식 선진 시스템이라고 만능은 아니다. GM의 3각동맹을 주도하고 있는 커코리안이 한국에 눈독을 들여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제2의 소버린, 칼 아이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에게 맞는 경영 시스템 확립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