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프랑스ㆍ스페인ㆍ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9개국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6일(현지시간) 유독 스페인에 대해서만 또다시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은 그리스에 이어 유럽 위기의 '제2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스페인 은행들의 부실징후가 심상치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 중앙은행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3개월 이상 원금과 이자 상환이 연체된 '부실의심채권'을 2월 현재 1,438억유로(215조원)나 보유하고 있다. 전체 여신 중 8.16%가 사실상 악성채권인 셈이다. 이는 1994년 이후 최고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 은행들은 오는 6월 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9%로 끌어올려야 한다. 팔아치워야 할 자산이 점차 부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부도의 공포만 점점 커지는 셈이다.
더구나 스페인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실시된 유럽중앙은행(ECB)의 무제한장기대출(LTRO)을 받아 자국 채권을 사들이면서 국채시장 안정에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다. 은행 줄도산이 현실화할 경우 국채를 받아줄 세력도 사라져 국채시장이 다시 한번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스페인 정부가 울며 겨자 먹기로 시중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이는 재정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국가신용등급이나 국채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스페인 정부 입장에서는 은행 문제가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이미 투자자들은 스페인 국채시장을 떠나고 있다. 이날 스페인과 독일의 10년물 국채금리 스프레드는 414bp(1bp=0.01%)까지 벌어졌는데 이는 스페인이 독일과 똑같은 돈을 빌릴 때 4% 이상의 초과 금리를 얹어줘야 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스페인 은행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유럽연합(EU) 차원의 비상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한 금융 콘퍼런스에 참석해 "유럽 차원에서 역내 은행의 부실 문제를 감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전담기구를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은행 리스크가 유럽 전체가 직접 나서야 할 중대한 문제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와 별개로 유럽 국가들만 직접 손을 벌릴 수 있도록 엄격하게 제한돼 있는 유럽안정화기구(ESM) 자금을 시중은행에 직접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 쥐트도이체자이퉁은 "ECB와 몇몇 유로존 국가들이 스페인 금융위기 전염을 조기 진화하기 위해 ESM 직접 대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 방안의 경우 국채시장 불안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은행 부실만 정교하게 수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