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12월 12일] 구조조정 ‘칼춤'에 소비가 운다

꽤 마음에 드는 슬로건이 하나 있다. 지난 2004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화포럼(WSF)의 슬로건이다.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시대조류 속에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슬로건은 타타(TATA). ‘대안은 무수히 많다(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의 약자다. 세계 경제인 및 정치가들의 모임인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대항해 비정부기구(NGO), 노동운동대표 등이 만든 WSF가 슬로건을 이렇게 정한 것은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는 하지만 양극화와 같은 부작용도 많은 만큼 대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단순히 세계화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가 아니라 그 대안을 찾자는 내용의 구호는 그 자체로 신선했다. 섣부른 조치는 소비 위축시켜 지금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잘나가던 전세계 경제가 한순간에 뒤흔들리면서 모두가 비상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수출이 급감하고 내수가 얼어붙고 있다. 금융불안으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실물경제로 옮아갈 수 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세계 각국의 대책도 대규모고 그 내용도 비슷비슷하다. 크게 3가지다. 은행 부실정리와 대규모 재정집행, 그리고 잇따른 금리인하다. 실물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기업들의 대책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큰 골자는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것이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당장 힘들어도 빠른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기간을 요하는 약물 치료보다는 수술을 통해 썩은 부분을 도려내 빨리 새 살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섣부른 구조조정은 불안감을 키우고 소비를 더 위축시킨다. 대규모 금리인하와 재정집행에도 돈이 돌지 않고 소비가 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누구나 들어온 돈은 일단 움켜쥐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한때 저축이 미덕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크다. 은행에만 돈이 몰리고 증시에 자금이 유입되지 않으면 주가가 꺼지면서 기업의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기고 회사채시장도 얼어붙는다. 그러면 소비는 더 위축되고 갈망하는 경기회복도 더뎌진다. 불안감을 줄이고 이를 반대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구조조정이 먼저인지, 일자리 유지가 우선인지, 아니면 이를 어떻게 조합해야 최적의 방안인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지금 음식업으로 대변되는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소비부진때문만이 아니다. 비슷한 업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다산다사(多産多死)의 구조도 주요 원인이다. 실직자가 늘어나면 그 구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일본이 미국식 구조조정을 거부해‘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하지만 종신고용을 고수하면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실패한 일본의 방식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세계경기침체의 촉발지도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감원은 최후의 수단으로 써야 이미 지나간 얘기이지만 IMF 금융위기 때 말레이시아는 국제사회의 이단아라는 평가를 들으며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IMF위기를 넘어섰다. IMF의 혹독한 구조조정 요구를 거부했다. IMF 극복시기는 우리가 더 빨랐는지 모르지만 어느쪽 국민의 고통이 더 심했는지는 아직 검증된 바 없다. 조직이 위기에 닥쳤을 때 인력 구조조정이라는‘칼춤’을 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수지책(下手之策)이며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업의 의무고 이 정부를 선택한 국민의 바람이다. 삼성 등 4대그룹이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런 점에서 환영할만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원이라는 방법 외에 기업효율을 높여 함께 불황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며 그 방식이 무엇이든 일자리에서 소비가 창출된다는 것에 바탕을 둬야 한다. /yt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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