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관투자자에 바란다

올해 초 종합지수 1,000포인트를 향해 힘차게 상승하던 증시가 심리적 지지선인 800선에 이어 급기야 750선 아래로 떨어지자 갈수록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기의 불확실성 증대와 무역적자 확대로 달러화 약세가 장기화될 전망인 데다 미국 증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도 25배에 이르는 등 대외변수가 불리해 한국 증시는 단기적으로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우선 주가를 결정하는 내재가치와 수급여건을 통해 앞으로의 증시를 점검해보자. 주가는 단기적으로 수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장기적으로 내재가치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지난 1ㆍ4분기에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기업들은 2ㆍ4분기에도 좋은 실적을 이어가 올해 상장사의 예상순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30조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올해 예상순이익 30조원에 PER 14배를 적용하면 시가총액은 420조원에 달하게 되며 이를 지수로 환산하면 1,080선이 나온다. 특히 우량주의 경우 예상실적이 더욱 양호해 펀더멘털 측면에서 볼 때 주식의 단기흐름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 보유할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주가결정의 또 다른 요인인 수급측면은 내재가치에 비해 비관적인 편이다. 증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자면 안정적 수요처인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난 90년대 미국 증시의 10년 호황은 기업의 좋은 내재가치 이외에 연기금ㆍ뮤추얼펀드 등 기관투자가의 역할 덕택이었다. 한국의 경우 기관투자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됐으며 변동성도 미국 등 선진국보다 매우 높다. 이 같은 기관투자가의 역할 부재는 주식 보유비중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96년까지만 해도 국내기관의 보유비중은 30%에 달해 외국인투자자(13%)의 두배 수준을 웃돌았다. 하지만 98년 이후 17조원의 주식을 순매도한 기관투자가들은 보유비중이 15.8%(지난해 말 기준)으로 쪼그라든 반면 외국인투자자들은 98년 이후 25조원을 순매수해 보유비중을 36%까지 끌어올렸다. 외국인투자자는 이제 한국증시의 큰 손으로 부상한 셈이다. 98년 이래 기관이 지속적으로 주식을 팔고 외국인이 주식을 거둬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발생한 금융기관의 퇴출은 기관투자가의 주식에 대한 시각을 크게 바꿨다. 주식을 위험자산으로 인식해 우량주를 장기 보유하기보다 차트분석을 통한 단기 이익실현 위주의 운용에 주력했다. 또 투자자산의 안전성을 강조하다 보니 대다수의 기관은 주식을 털어내고 채권 위주의 투자에 주력했고 그 결과 지난해 말 현재 장기성 자산운용 기관의 주식 보유비중은 총운용자산의 5%에 불과한 실정이다. 단기운용에 익숙한 기관은 기술적 분석을 바탕으로 지수대를 설정해놓고 박스권 매매에만 치중했다. 반면 외국인은 주식이 위험자산이지만 관리만 잘하면 높은 보상을 얻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지수 등락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을 대표하는 블루칩 주식을 기관투자가가 바겐세일하는 동안 50% 이상 집중적으로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전략을 택했다. 또 투신권에 유입되는 간접투자자금도 증시가 달아오르면 늘어나고 하락하면 유출되는 지수 후행적 성격을 보이는 단기자금이다. 특히 투신들은 바닥에서 외국인에게 보유주식을 싸게 팔고 상투권에서 외국인으로부터 주식을 되사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99년 6월과 7월 그리고 올 1ㆍ4분기에 나타난 것처럼 기관이 확신을 갖고 주도권을 잡으면 단기간에 매우 공격적인 투자운용을 펼쳐 지수의 급속한 상승과 주가 차별화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후유증은 언제나 급락으로 나타나며 상투권에서 대량으로 나오는 외국인의 차익 매물을 껴안고 손실을 본 기관은 이후 주식투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가가 싸도 사지 못하고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외국인이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떠맡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침체기에는 주식의 수요자로 떠오르고 활황기에는 공급자로 변신해 증시를 안정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한국 주식에 대한 애정은 보유비중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외국인들이 50% 이상 보유한 삼성전자나 SK텔레콤, 삼성화재 등 6개 종목을 90년부터 현재까지 12년 장기 보유했다면 배당을 제외하고도 유무상증자와 주가 상승으로 투자원금은 24배나 늘어났을 것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시장이나 고객을 탓하기보다 주식에 대한 인식 변화와 스스로의 운용전략을 점검해야만 위상도 되찾고 수익도 올릴 수 있다. 이제 외국인의 매도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바로 기관이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유시왕<삼성증권 고문>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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