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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로 소비 절대량도 줄어… 내수 의존 중기는 벼랑끝으로
산업 영향 실증적 연구 통해 업종·기업별 대응전략 수립
U헬스·홈케어 산업 등 유망업종 육성책도 마련해야
인천 서구에 위치한 주물제조업체 P사. 사장인 박모씨는 공장을 둘러볼 때면 속이 끓어오른다. 경기불황 속에서도 성실한 고객관리로 주문물량이 끊이지 않는데도 정작 생산라인의 절반은 놀리고 있다. 일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손이 없어서다. 젊은 숙련기술 인력을 찾기가 워낙 힘들어 계약을 하자는 바이어가 와도 제때 납기를 지키지 못할까봐 도리어 손사래를 치기 일쑤라고 한다.
문제는 앞으로 5~10년 뒤다. 박 사장은 "대부분 50세를 넘어 준고령자인 지금의 직원들이 수년 뒤 은퇴하고 나면 아예 공장 문을 닫을 판"이라며 하소연했다.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대한민국 뿌리인 산업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뿌리산업은 소재나 부품을 반제품ㆍ완제품 등으로 완성하는 금형ㆍ주조ㆍ용접ㆍ열처리ㆍ표면처리ㆍ소성가공 등 6개 분야를 통칭하는데 자본과 기술ㆍ일감이 있어도 노동력이 없어 간판을 내릴 지경에 이르렀다.
뿌리산업은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모든 제조업의 기반이 된다. 승용차 완제품을 예로 들면 전체 2만2,000여개의 부품 중 뿌리산업계의 가공을 거쳐야 하는 부품 비중이 90%를 넘는다. 선박 제조 현장에서는 전체 작업의 35%가 용접으로 이뤄질 정도다. 독일ㆍ일본 등 제조업 강국은 한결같이 튼튼한 뿌리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뿌리산업의 일손 부족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박동 정지를 경고하는 심각한 예후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인구는 한반도 유사 이래 최대치를 경신하며 오는 6월23일 5,000만명을 넘어설 예정이지만 정작 경제 현장에서는 노동력 가뭄이 가파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구 총량이 늘었음에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면서 빚어진 비극이다.
그나마도 당분간은 사정이 나은 편.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더라도 인구 총량은 늘기 때문에 고령 인구를 다시 생산 현장으로 끌어들이거나 신흥국의 젊은 노동자로 잠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20년 뒤면 형편은 달라진다. 오는 2030년 우리나라 인구가 5,216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부터는 인구 총량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다.
정승모 경인주물공단사업조합 전무이사는 "신규 인력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기술자의 은퇴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면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고령화로 인해 산업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산업의 피해는 특히 중소기업들에 집중될 것으로 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내수시장에 의존하는데 인구가 줄면 국내 소비의 절대량 자체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입고, 먹고, 놀고, 마시는 등 소비자의 활동 총량이 줄어들면서 내수시장에서 식료품, 피복ㆍ신발, 가구∙집기 등 분야의 중소기업들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다. 이밖에 유아용품 산업, 소아과, 어린이 보육시설, 초중고교, 대학교 등도 인구감소의 결정타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의 산업계는 아직도 단기 경영에 몰두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올 대재앙에 대해 기업들의 중장기적인 전략 수립이나 마케팅ㆍ기술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이는 인구구조 변화가 우리나라의 전체 산업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이와 관련한 실증연구는 한국산업연구원이 올해 말 완료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인구구조 변화와 2030년 산업구조 전망' 연구 프로젝트가 거의 유일하다고 학계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종별ㆍ기업집단별로 인구구조에 따른 경영전략을 위한 기초연구에 인력과 자본을 투여하고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아울러 인구구조 변화시 새롭게 성장할 업종을 가려 집중 육성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새로운 니치마켓이 창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저출산∙독신∙실버층 등을 공략한 라이프 스타일 상품 개발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건강 관련 비즈니스와 노후대비연금, 주택 리노베이션 수요 증가, 의료 관련 금융상품 시장 확대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구체적으로는 노인장기요양산업, U헬스 및 홈케어 산업, 고령자 여가 및 관광산업, 실버 주거지 및 고령자 주택산업, 피부관리 및 모발관리 서비스, 고령친화 의약품산업 등이 앞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